[A+레포트]고려시대 조공체제 및 외교관계
- 최초 등록일
- 2018.01.07
- 최종 저작일
-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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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서평)
Ⅱ. 본론
ⅰ.조공관계의 배경
ⅱ. 고려와 송나라의 조공관계
ⅲ. 고려와 원나라의 조공관계
Ⅲ. 결론
본문내용
성리학자들은 그 속에서 사회경제적 안정과 성리학적 가치와 질서를 추구하려 했다.
그에 따라 성리학자들은 사대예법에 따른 평화적 국제관계와 왕도정치를 추구했다.
ⅱ. 고려와 송나라의 조공관계
한편 중국 내부를 보면 그들은 세계의 중심이라 여겨 대외 관계 속에서 주변국들을 화이(華夷)질서로 다스렸다,
이 질서는 조공을 통해 나타났는데, 화이질서는 화(化)와 이(夷)를 구분하면서, ‘화’인 중국이 오랑캐인 ‘이’를 교화시켜 중화 이념을 부여하고자 하는 목적에 있었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조공 외에도 책봉정책을 펴 주변국의 군주를 중국의 관작을 주어 상하관계를 설정했다.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국이 화이질서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책봉(冊封)과 조공이었다.
종주국의 천자가 번속국의 군주를 책봉함으로써 조공관계가 성립한다.
이후 번속국은 정해진 시기에 조공을 하고 이에 대하여 천자는 회사(回賜)를 한다. 화이질서의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책봉과 조공이라는 의례의 실행 여부에 있었다.
흔히 책봉체제 또는 조공체제라고도 부르는 까닭이다. 조공과 회사라는 화이질서 안의 기본 의례는 실제로는 통상이었다. 조공무역 또는 공무역(公貿易)을 일컫는다. 경제행위인 무역이 조공과 회사라는 의례로 포장된 것이다.
여기서도 일시동인(一視同仁)이라는 천자의 덕이 강조되면서 조공보다는 회사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실제의 이익은 접어두고 언제나 적게 받고 후하게 준다고 선전되었다.
공무역에는 사무역이 수반되었다.
사행(使行)의 수행원(허가받은 상인이 포함된다)과 현지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역이 그것이다.
이 사무역은 공무역이 갖는 경직성을 보완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생산력 발전은 무역 수요의 필연적 증가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야기되는 모순과 갈등은 사무역의 확대를 눈감는 것으로 호도될 수 있었다.
조공국이 국내 정치상황이나 무역의 필요 등 화이질서를 받아들이는 사정은 한결같지 않았다.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이에 따라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고려국가와 집단의식-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노명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