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단건축
- 최초 등록일
- 2017.12.28
- 최종 저작일
- 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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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조성과정
2. 분석
1) 마을입지
2) 위치
3) 배치
4) 평면과 공간구성
5) 구조와 재료
6) 입면분석
3. 현대 건축과의 연계성 분석
4. 출처
본문내용
- 조성과정
향단의 조성배경은 양동마을의 양성가문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동마을은 처가의 손이 끊기면 모든 재산이 사위에게 상속되었고 동네에 터를 잡는 것이 관습이었는데 1450년대 ‘손소’라는 청년이 부인을 따라 처가가 있는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손소는 일찍이 과거 급제하여 굵직한 관직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으며 손소뿐만 아니라 손소의 자식들도 최고위직 벼슬뿐 아니라 성리학계의 태두로 추앙받으며 부자 2대에 걸친 명문가를 형성하여 손씨 가문은 양동마을에 뿌리를 내려 가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때 손소의 7남매 중 장녀에게 ‘이번’이라는 청년이 장가를 들어 처가살이를 시작했고 세 아들을 슬하에 두고 일찍이 사망하였다. 따라서 그 아들들은 양동의 외가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그 둘째 아들이 바로 향단의 건축주이가 건축가인 ‘이언적’이다.
이언적은 일찍 간 부친 대신 외삼촌인 손중돈의 손에서 학문을 지도받으며 경제적 기반을 잡는데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배움을 토대로 이조판서와 좌찬성을 역임하고 동방4현의 지위에 오른 대사상가이며 사후 조선 18현에 오른 학자이자 성현으로 자라게 되었다. 뛰어난 인물이 배출된 것은 좋은 일이나 이로 인하여 이씨의 자손들이 번창하여 급기야는 손씨 가문을 압도하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양동마을에 기존의 ‘손씨 가문’과 이언적을 중심으로 한 ‘이씨 가문’이 한 마을에 동거하는 양성씨족 마을이 형성되었다. 두 가문은 모두 긍지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는 것 같았으나 내부적으로는 은밀한 갈등과 대립관계로 경쟁을 벌여왔다. 두 가문의 대립관계로 인하여 양동마을의 주요 시설물은 모두가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자는 손가의 수운정과 이가의 심수정, 서당 또한 마찬가지로 손씨 아이들은 안락정, 이씨 아이들은 강학당에서 배웠다. 뿐만 아니라 이가에서는 옥산서원을 세워 이언적을 모시고 손가에서는 동강서원을 세워 손중돈을 배향하였다.
참고 자료
김봉렬, 김봉렬의 한국 건축 이야기 돌베개 2006
옥선호, 양동 마을의 관가정과 향단 학술논문 200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29395&cid=42672&categoryId=4267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301&cid=46673&categoryId=46673
http://blog.daum.net/ayam3390/888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