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6.01.23
- 최종 저작일
- 2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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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유득공과 발해고
1. 생애
2. 역사 인식과 저술
3. 발해고
4. 서해응의 서문
5. 박제가의 서문
6. 유득공의 서문
Ⅱ. 발해고
1. 왕에 관한 고찰 [군고(君考)]
2. 신하에 관한 고찰
3. 지리에 관한 고찰
4. 의식 및 복장에 관한 고찰
5. 국어에 관한 고찰
6. 후예국가에 관한 고찰
Ⅲ. 발해고를 덮으며
본문내용
Ⅰ 유득공과 발해고
1. 생애
유득공은 부친 유춘이 결혼 8년만인 1748년 11월 5일에 낳은 아들이다. 이 때 유득공의 증조부와 외조부가 서자였기 때문에 그는 서얼 신분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의 생애는 대체로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성장기는 그가 태어나서부터 20세 전후까지를 이른다. 그의 부친이 5세 때에 세상을 뜨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글공부를 하였다.
20세 이후 북학파 인사들과의 교유기에 접어드는데 이 당시에 그는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등과 서로 교유하였다, 유득공이 27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는데 이를 전후하여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되면서 암울한 심정을 노래하였다. 이 시기에 정리된 문집이 『가상루집』 이다.
유득공이 32세, 영조가 승하한 후 정조가 즉위하여 규장각을 설치하게 되는데 정조는 유득공을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하게 된다, 이후 그의 시들은 암울했던 지난날과 달리 밝아지면서 삶에 날개를 달게 된다.
그러나 유득공을 아끼던 정조가 돌아가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유득공의 모친이 사망한 후로는 그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한다.
2. 역사 인식과 저술
유득공은 문헌을 두루 섭렵하고 글자의 속성과 소리에 관심을 기울인 점 때문에 우리 역사와 관련된 새로운 자료들을 자주 찾아내곤 했다. 또한 유득공은 중국과 조선 외에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그의 세계관이 넓어짐에 따라 중국 일변도의 관념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발해고』에서 일본 사료까지 인용할 수 있었다.
유득공의 사료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던 종래의 견해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러 사서들을 검토하지 않아서 3한 이전의 역사를 알지 못하게 된 것은 탄식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금석문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