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교육(개화기 교육, 주권상실기 교육, 주권회복 후의 교육)
- 최초 등록일
- 2015.12.12
- 최종 저작일
-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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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개화기의 교육
1. 민족지도자의 교육 구국운동
a) 사립학교 설립
b) 원산학교
2. 선교사의 교육활동
a) 배재학당
b) 이화학당
c) 교육사적 의의
II. 주권상실기의 교육
1. 식민지 교육정책의 비교
2. 무단적 식민교육기
3. 유화적 식민교육기
4. 황민화 교육기
5. 주권회복을 위한 민족교육
a) 3.1 운동의 교육적 의미
b) 조선 민립대학 설립운동
c) 동아일보사의 브나로드운동
d) 그 외 사회교육 운동
III. 주권회복 후의 교육
1. 미군정기의 교육
a) 조선교육심의회
b) 한국교육의 기틀
2. 대한민국의 교육
a) 전쟁의 상처와 교육
b) 군사정권하의 교육
3. 북한의 교육
a) 북한 교육의 방향
b) 북한 교육제도
본문내용
전통적인 교육체제와 현대 서구식 교육이 교체되는 구한 말기부터를 한국의 현대교육으로 보고 있다. 이를 구한말 개화기의 교육과 주권이 상실되었던 일제하의 교육 그리고 정부수립 이후의 교육은 해방 후 미군정기와 정부수립 이후의 교육을 합하여 알아본다.
I. 개화기의 교육
조선은 개국하면서 불교를 밀리하고 중국과 더불어 유교(성리학)를 정치적 이념으로 하여 나라의 체제를 유지해 오다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대내적으로는 집권층의 갈등과 사회적 혼란이 심화되고, 대외적으로는 서양의 자본주의가 아시아를 식민화하려는 정책에 편승한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의하여 부득이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그 이후 조선은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러 나라와 통상수호조약을 맺어 개화기를 맞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력이 약했던 대한제국의 한반도는 열강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조선은 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1910년 일본의 조선 늑탈로 국권을 잃었고, 한민족사는 단절되는 비운을 맛보게 되었다.
국권을 상설하기 전, 나라가 품전등화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교육입국의 정신을 내세우고 교육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첫 번째는 민족지도자의 교육운동이었고, 두 번째는 기독교 선교사의 교육운동이었으며, 세 번째가 정부주도하에 전개된 교육운동이었다.
(1) 민족지도자의 교육 구국운동
a) 사립학교 설립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H)은 조선을 더욱 압박하여 1905년에는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침략의 야욕을 노골화하였다. 이때 뜻있는 시민들과 민족지도자들 중에는 교육을 통하여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는 한편, 사립학교의 모체가 되었던 학회를 결성하여 학교를 세우고 야학을 열며 각종 강연회와 토론회, 문화운동 등의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수많은 사립학교가 설립되고, 재래식 서당이 개량서당으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