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및 본기의 인물 분석 - 항우본기의 서초패왕 항우
- 최초 등록일
- 2014.11.25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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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마천의 사기 속에 나오는 인물을 분석하는 과제물이었습니다.
본 과제물은 세력이 더 강대했던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원인을 중심으로 분석했으며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남겨줬는지 서술했습니다.
10점 만점에 9점 받은 자료이며, 항우와 관련된 다른 과제물에 비해 훨씬 높은 퀄리티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운 진(秦)의 가혹한 통치로 인해 당시 백성들의 원망이 극에 달해 기원전 209년에는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나는 등 반진(反秦)세력의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 혼란한 시기에 등장한 이들이 항우와 유방으로써, 진한교체기의 천하를 차지하려는 이 둘의 싸움은 ‘초한대전’이라 불리며 중국사의 한 획을 긋는 전쟁으로 평가된다. 항우는 24세의 나이에 회계군수 은통을 살해하고 거병한 이후, 초나라 왕실의 후예인 회왕(의제)을 옹립하고 진나라의 장한을 ‘거록전투’에서 격파한 뒤, 함양에 입성해 진의 황제 자영을 죽이고 진나라를 멸망시킨다. 전 중국의 실질적 최강자가 된 항우는 군현제로 정비되었던 진의 영토를 18명의 제후에게 분봉하여 봉건제를 부활시키는데, 그 제후 중 하나였던 유방이 세력을 키워 팽성, 형양, 광무, 해하 등지에서 항우와 계속 싸우게 된다. 결국 최후에 패배한 항우가 오강에서 자결함으로써 중국 대륙의 긴 혼란은 유방과 그가 세운 한나라의 승리로 끝이 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애초에 초나라 명문 귀족가문 출신인 데다가 이미 한차례 천하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던 항우가, 동네 건달 출신에 별다른 특출한 능력도 없던 유방에게 패배했다는 것이다. ‘역발산기개세’로 표현되는 불세출의 용장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 략>
셋째로, 인사관리상의 실책을 들 수 있다. 항우는 초나라 회왕을 왕위에 옹립하여 초 왕실의 재건과, 진을 타도한다는 정당성을 갖출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반진 세력의 구심점이 되었다. 또한 제후왕 분봉 때에는 회왕을 의제로 높여 천자로 삼고 자신은 패왕이 됨으로써 춘추시대의 오패와도 같은 반열에 자신을 올렸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이 옹립한 의제를 살해했다. 스스로 역적이 된 것이다. 이는 라이벌 유방에게 엄청난 명분을 실어주게 된다. 항우는 18제후왕 분봉을 포함한 논공행상 또한 그르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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