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조사 인천 갈산동의 어제와 오늘 지역사회 기사
- 최초 등록일
- 2014.11.03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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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칡이 많았던 나의 고향
2. 지금이 이름을 얻기 까지
3. 갈산동의 봄과 여름
4. 갈산동의 겨울
5. 소나무처럼
본문내용
칡이 많았던 나의 고향
지금은 아니지만 언 20년 넘게 함께한 갈산동(葛山洞)을 소개하고자 한다. 갈산동이라는 어원은 지금의 부평정수장 자리에 있던 산 이름으로 칡이 우거져 칡갈(葛)자를 써서 ‘갈산’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필자가 어렸을때는 부평정수장이 이미 들어서 있었고 어린시절 사회를 사회과목에서 갈산동을 왜 칡갈자와 뫼산자를 쓰는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이미 갈산동에 칡과 산을 볼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이 고향인 필자의 아버지의 예기를 들어보면 이곳에 칡이 많이 자라 갈산시장에서 칡을 많이 판매 하였다고 한다.
지금이 이름을 얻기 까지 갈산동의 연혁은 보면 처음 일제시절 토지조사 사업이 시작되면서 지금의 지역에 어원에 근접하게 이름이 정해진다 처음 지역명은 경기도 부평군 서면 갈월리에 있었지만 해방전까지 편입군이 바뀌는 이력이 있지만 해방후 1946년 1월 1일 경기도 인천시 갈산동으로 개칭 지금의 지역명으로 개정된다 구후에 삼산동과 편입 분리를 거치고 지역이 갈산1동 갈산2동 분리 되며 1981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이 되면 인천직할시 부평군 1995년 1월 1일 인천광역시 북구로 인천광역시로 승격이 되면서 갈산 1동, 2동으로 분리 된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1동, 2동 (북구가 부평구 및 계양구로 분구) 지금의 명칭을 가지게 된다
갈산동의 봄과 여름
갈산동은 발전은 봄처럼 찬란했으며 여름처럼 매섭게 발전했다
경인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갈산동은 발전하고 변화 되었다 국도를 이용할 경우 1시간 이상 걸리던 것을 18분으로 단축시킴으로써 서울과 인천 구간을 광역공업권으로 발전시켰다
<경인 고속도로>
또한1980년대부터 성장한 자동차공업이 각방 받으면서 꾸준히 성장하였으며 갈산동 바로 옆에는 인근에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전 현 GM 쉐보레 갈산동의 지역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이 갈산동 바로 옆 인근에 있어서 갈산동에 많은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33215
http://www.asiae.co.kr/car/news/view.htm?sec=cphoto2&idxno=201009112104122508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nsong2&logNo=130019982212&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