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 속의 정복왕조
- 최초 등록일
- 2014.08.07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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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유목국가와 정복왕조론
1) 요의 이중통치체제
2)금의 건국과 국가구조
2. 몽골제국의 성립과 원의 중국통치
1)칭기즈칸의 등장과 몽골제국
2)원조의 건국과 강남 지배
3)원대의 사회와 경제
본문내용
정복왕조(Conquest Dynasties)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독일 출신의 동양학자인 비트포겔(K. Wittfogel)이 사용함으로써 알려졌다. 그에 의하면 정복왕조란 중화제국 역사상 전형적인 중국왕조 외에, 이들과 항쟁하면서 때로 이들을 정복하고 지배한 요(遼)를 비롯해 금(金), 원(元), 청(淸) 등, 유목민족이 건립한 여러 왕조들을 가리킨다.
그는 남북조시기에 중국 내지로 이주해서 중국의 일부를 점령해 지배했던 북위 등을 침투왕조(Infiltration Dynasties) 혹은 잠입왕조라 하여 정복왕조와 구분했다. 침투왕조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화북지역으로 내려와 거주하다가 반평화적인 방법으로 국가를 건립하고, 이후 수 세대가 지나면서 국가가 멸망하자 중국의 문화에 흡수·동화되어 버린 것과는 달리, 정복왕조는 장성 이북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해 중국을 일시적으로 정복했다.
<중 략>
원의 제도는 외형상 중국적인 통치체제인 듯하지만 실제 중국왕조의 관료제 지배와는 달랐다. 원나라에서 중앙과 지방의 행정의 중추를 담당했던 것은 유목귀족층이었는데, 이들은 칭기즈칸의 정복사업을 뒷받침한 군사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군사제도는 천호·백호제였는데, 금조의 맹안·모극제와 마찬가지로 몽골의 부락제를 10진법적인 군사 및 행정의 조직으로 편제한 것이었다. 천호와 백호의 장에는 충성을 서약한 장령이 임명되었고, 이들의 지위는 세습되어 칭기즈칸의 일족과 함께 유목귀족층을 형성하고 몽골 종실과 신하관계를 형성했다.
이들 외에 정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색목인(色目人)과 한인세후였는데, 이들은 정복과정에서 몽골정권과 특수한 관계를 맺은 연유로 발탁되었고, 일반 중국인은 정권에서 배제되었다. 색목인이란 아라비아인 혹은 유럽인을 의미했다. 또한 지방의 각급 행정기구에는 감독관인 다루가치가 파견되었기 때문에 송대의 관료임용제도로 확립되었던 과거제는 그 의의를 잃고 폐지되었다. 1315년 이후 과거제가 가끔 시행되었지만 합격자의 수를 똑같이 분배함으로써 수가 적은 몽골족과 색목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