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 프랑스 혁명에 관한 새로운 해석과 그 문제점
- 최초 등록일
- 2003.06.18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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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영-미 계통의 수정자본주의
1. 프랑스 혁명이 反 봉건적이고 反 귀족적인 혁명(bourgeois revolution)이었다는 해석
2. 1967년에 발표된 테일러의 "비자본가적 부와 프랑스 혁명의 기원"이라는 논문은 부분적으로나마 코반의 주장을 옹호하는 실증적인 연구이다.
3. 코반과 테일러의 견해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으나 그들의 수정주의는 다같이 프랑스 혁명이 부르조아 혁명이었다 는 정통적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II. 프랑스 내의 수정주의
1. Richet
2. Chaussinand - Nogaret
3. 1973년 퓌레와 리쉐의 1965년에 출판한 혁명사의 수정판
III. 마치며
본문내용
I. 영-미 계통의 수정자본주의
1. 프랑스 혁명이 反 봉건적이고 反 귀족적인 혁명(bourgeois revolution)이었다는 해석
19세기 이래의 장기간에 걸친 연구사와 방대한 실증적인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해석이다. 그런데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정통적 해석에 대한 이의와 도전이 주로 영-미 계통의 역사가들로부터 제기되었으며, 그 시작이 영국의 코반이다.
코반은 먼저 프랑스 혁명의 반봉건적인 성격을 부정한다. 그에 의하면 '봉건제도(feudalism)'는 중세의 사회조직을 서술하기 위하여 만든 술어로서 프랑스 혁명 때에는 토지소유에 입각한 통치체제로서의 봉건제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두번째로 프랑스 혁명이 부르조아 혁명이라면 그 주체는 혁명적 부르조아지일 것인 바,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문제 를 제기하고 혁명기의 두 의회 즉 국민의회와 의원들의 직업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코반은 혁명적 부르조아지의 실체는 결국 관리와 전문직업인계급(a class of fonctionnaires and professional men)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사실 즉 봉건제도라는 용어의 좁은 해석과 두 혁명의회 의원의 직업분석을 감안할 때 혁명의 범위와 규 모는 현저하게 축소될 수 밖에 없다고 코반은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그의 해석을 제시한다. "혁명은 위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계속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