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육의 전환점1
- 최초 등록일
- 2014.06.13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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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어머니의 방목형 육아
2. 아버지의 엄격한 육아
3. 6학년 담임 선생님의 그림자 교육
4. 외고준비반에서의 좌절
본문내용
어렸을 적에 나는 어머니가 자녀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나를 떠올려보면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셔서 항상 혼자 공부하고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떠오른다. 그리고 조금 더 컸을 무렵에는 학원을 다니고 싶으면 내가 혼자 가서 상담을 받고 등록을 하곤 했다. 그 또래 중에서 부모님께서 같이 학원에 방문하지 않은 학생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어머니에게 서운함이 쌓였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어머니의 교육방식은 일관되셨다.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시험 전날에는 제발 무리하지 말고 일찍 자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나는 성적을 잘 받고 싶은데,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은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중 략>
우리 집에는 아들이 없다. 그리고 나는 두 명의 딸 중에서 첫째이다. 외가,친가에서도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장남과 장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아버지는 나를 강하게 키우고 싶어 하셨다. 아마 나를 아들처럼 여기셨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와는 많은 스포츠를 함께 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키장에서 처음 스키를 배울 때였다. 나는 거의 모든 스포츠를 아버지께 배웠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버지가 딸을 가르칠 때 다정한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매우 엄격해서 아마 타인이 볼 때는 어린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중 략>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담임 선생님 덕분이다. 나는 5학년 때 학교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다. 전학 온 뒤에 내성적이게 지내고, 모든 불만을 억누른게 터져나온 것이다. 그 때는 담임 선생님께 나와 내친구들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강했고, 공부 또한 완전히 놓아버렸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나를 6학년 담임 선생님은 따뜻하게 보듬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선생님은 그 해에 부임하신 초임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