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농민 전쟁에 대한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3.11.05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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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농민전쟁을 통해 왜 일어났는지 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경제와 종교측면에서 분석하고 독일농민전쟁이 독일사회에 심어준 의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독일의 경제적 상황과 사회계급들
Ⅲ. 주요 반대파 집단들과 루터와 뮌쩌
Ⅳ. 독일농민전쟁의 배경
Ⅴ. 농민전쟁의 사상적 배경
Ⅵ. 농민봉기의 변화와 농민전쟁의 시작
Ⅶ. 루터의 농민전쟁에 대한 입장
Ⅷ. 농민전쟁의 요구사항
Ⅸ. 농민전쟁의 결과
Ⅹ. 농민전쟁의 의의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한국의 역사와 더불어 동?서양의 역사를 보면 구체제의 모순에 항거하여 기존 종교에 반하는 새로운 종교를 이념으로 이상 사회, 혹은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에는 동학농민전쟁, 중국에는 태평천국의 난, 유럽에는 독일농민전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시대, 역사적 배경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쟁의 주체였던 피지배계층(주로 농민)이 종교적 이념을 가지고 그들이 추구하려는 이상과 목적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존재한다. 그리고 반봉건적 평등사상에 입각한 근대적 민주화를 부르짖은 운동으로 18세기 말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은 프랑스 대혁명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적 이념과 변변찮은 무기로 저항한 이들은 지배층의 무력진압으로 실패하고 만다.
<중 략>
농민전쟁의 결과로 가장 고통을 겪은 계급은 성직자였다. 그들의 수도원 재산은 불타버렸고, 그들의 보물은 약탈되어 외국에 판매되든가 용해되어버렸으며, 그들의 보물은 약탈되어 외국에 판매되든가 용해되어버렸으며, 그들이 저축한 것은 소비되어버렸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도 저항할 힘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았으며, 동시에 인민의 오랜 증오의 모든 중압은 그들에게 가장 무겁게 떨어졌다. 다른 여러 신분들, 즉 제후, 귀족, 중간계급은 증오받는 고위성직자들의 고통 속에서 비밀스러운 기쁨조차 경험하곤 했다. 농민전쟁은 교회재산을 농민을 위해 세속화시키는 것을 유행으로 만들었다. 세속제후와, 어느 정도까지는 도시도 이 세속화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행하고자 결심했으며, 곧 프로테스탄트 나라들에서 고위성직자의 소유령은 제후나 문벌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렸다. 성직제후의 힘과 권위도 침해되었으며, 세속제후는 인민의 증오를 이 방면으로 어떻게 이용할지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이미 본 바와 같이, 풀다의 수도원장은 헤쎈의 필립에 대한 봉주로부터 그 가신의 지위로 격하되었다.
참고 자료
메리 플브룩『분열과 통일의 독일사』개마고원, 2000
김영한「독일농민전쟁과 천년왕국신앙」『역사학보』VOL 153
하겐 슐체 『새로 쓴 독일 역사』 |반성완 역 |지와사랑
손규태 『마르틴 루터의 신학사상과 윤리』 대한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