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시기의 재세례파와 그들에 대한 칼빈의 견해연구
- 최초 등록일
- 2013.11.05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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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교개혁시기의 재세례파에 대한 연구입니다.
목차
1. 재세례파
1) 재세례파의 정의
2) 종교개혁 시기의 재세례파 운동
2. 재세례파에 대한 칼빈의 견해
(1) 세례에 관하여.
(2) 사유재산에 관하여.
(3) 교회에 관하여.
(4) 국가에 관하여.
3. 결론
본문내용
2006년 10월 2일 미국 펜실베니아 랭캐스터에 위치한 아미쉬 마을의 학교에서 충격적인 총격 사건이 발생하였다. 찰스 로버츠라는 트럭 운전수가 교실에 침입하여서 11명의 아이들에게 총을 쏴서 결국 5명이 숨지고 스스로 자살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날 저녁 찰스 로버츠의 총격에 희생된 피해자들의 부모들이 총격사건의 가해자인 찰스 로버츠의 집에 찾아갔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희생자들의 부모들이 도리어 가해자 찰스의 미망인과 남겨진 찰스의 세 자녀들을 위로하였다. 또한 며칠 후 찰스의 장례식장에는 많은 아미쉬 마을의 사람들이 참석하여서 찰스의 남겨진 가족들을 위로하였다. 경쟁과 증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들의 모습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용서’, ‘평화’라는 것은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들은 지금도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예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면서 신앙을 지켜오고 있는 ‘재세례파’이다.
‘재세례파’는 종교개혁시대에 시작된 신앙 분파이다. 그런데 지금껏 교회사에서 ‘재세례파’에 대한 연구는 그리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재세례파’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시대에 교회와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홍치모 교수는 종교개혁사 연구에 있어서 ‘재세례파’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본 보고서를 통하여서 ‘재세례파’ 운동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피고 당시 칼빈은 재세례파에 대하여 어떻게 평하였는지 살피고자 한다.
1. 재세례파
1) 재세례파의 정의
교회 역사에서 최초로 ‘재세례파’(Anabaptist)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던 것은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방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세례의 커다란 원리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기원(invocation)에다 두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 세례는 어떤 것이든 그것을 누가 행했던 효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도나투스파간의 논쟁에서 도나투스파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자기들에게 넘어오는 자들에게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세례를 주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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