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왜란과 호란
- 최초 등록일
- 2002.12.12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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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왜란과 호란의 경과 및 의의, 결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왜란
2. 호란
본문내용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구성된 조선과 일본과의 전쟁은 조선과 일본뿐만 아니라 명나라까지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양국간 전쟁이 아닌 다국간 전쟁으로 지역 분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적 이유를 명나라로 진출하기 위하여 조선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 침공은 명시적으로 명나라까지를 포함한 전쟁을 가상하고 있었다. 조선과 일본의 전쟁은 지역 내 국제전의 성격을 지니게 되어 참가 개별국가 내부의 권력 구조나 사회 변화는 물론, 지역 내의 세력 판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기록된 조선과 청의 전쟁은 정치․사회적으로 조선의 대외적 위상을 변화시키고 대내적인 변화를 촉진시킨 요인으로 작용한 거시 외에도, 명나라의 멸망을 재촉하고 여진족(女眞族)이 세운 청(淸)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는 커다란 변화를 현실화하게 되었다. 조선과 청의 전쟁은 국가간의 관계 설정이나 문제의 해결은 감정적인 대응이나 대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국력과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는 냉정한 판단과 계산, 그리고 대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이와 같이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기록된 조선과 청의 전쟁은 정치·사회적으로 조선의 대외적 위상을 변화시키고 대내적인 변화를 촉진시킨 요인으로 작용한 거시 외에도, 명나라의 멸망을 재촉하고 여진족(女眞族)이 세운 청(淸)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는 커다란 변화를 현실화하게 되었다. 군사적으로는 조선의 거점을 중심으로 한 소극적 방어 태세로서는 방어 자체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겼으며, 자위력의 뒷받침이 없는 감정적인 척화(斥和)만으로는 국체(國體)를 보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시켰고, 군사력이 부족할 경우에는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는 전쟁을 막는 외교적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시켜 주었다. 결국 조선과 청의 전쟁은 국가간의 관계 설정이나 문제의 해결은 감정적인 대응이나 대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국력과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는 냉정한 판단과 계산, 그리고 대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참고 자료
한국사 통론
한국사(조선시대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