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역사 인식과 그에 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12.12.30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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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키아벨리의 역사 인식과 함께 그의 사상에 대해서 고찰하였습니다. 논문 형식으로 그의 작품과 역사적 서술에
대해서도 논하였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➀마키아벨리의 생애
➁마키아벨리에 대한 고찰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의 관계를 중심으로
③마키아벨리의 서술 경향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주의적 서술 경향과 마키아벨리
④마키아벨리의 역사 인식
ⅰ)마키아벨리의 시대인식
ⅱ)마키아벨리의 역사인식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마키아벨리가 제기하고 있는 주장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마키아벨리를 연구하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해이다. 이를 위해 본 단락에서는 마키아벨리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또한 필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도록 하겠다.
마키아벨리가 활약했던 15C 후반~16C 초 당시 유럽은 특히 서유럽에서 군주의 권력이 크게 신장되어 서유럽의 국가들은 중앙집권적 형태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이들은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보이듯이 그간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중세 귀족들과 교회 세력, 자치도시 등 중세적 세력을 제압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장악하면서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16C 들어 시작되는 신대륙의 발견과 상업의 발전이 이러한 중앙집권을 결과적으로 강화시키게 되었다. 게다가 교황의 권위가 크게 감소되고 왕의 실질적 권력이 증대되었으며, 예전에 교황이 맡고 있던 신神적인 권위까지 서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업의 성장과 신적 권위의 뒷받침은 결국 절대왕정이라는 일원적 체제로 이어졌으며 이들 절대왕정 국가들의 힘은 그전 중세 봉건국가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중 략>
이것이 그의 순환사관의 요점이다. 『국가와 폭력』, p. 169 참조
당시 피렌체는 그가 보기에 비르투가 사라져버린 상황이었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한 나라의 비르투는 훌륭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또한 무력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안일이 끼어들 일이 없으므로 그 비르투는 유지되나, 문예나 예술 등은 이러한 비르투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피렌체에서 비르투가 사라진 것은 귀족 세력을 몰아낸 상업 과두정적인 메디치 가의 집권 때문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보고 있다. 피렌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비르투는 상업과두정적인 메디치 가의 집권과 문예 진흥 등으로 급격히 약화되었으며, 피렌체는 결국 군사적으로 변변한 대처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상업 과두세력의 국내외 정책을 로마의 비르투를 판단할 때와 같은 존경심을 갖고 볼 수는 없지만 그 형편없는 무력으로 다수의 귀족들을 잘 견제한 점을 볼 때 생기는 존경심은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다.” 라고 『피렌체사』5권에서 독설 아닌 독설로 맹렬히 메디치 가를 비판한다. 다시 말하면 메디치 가에 의한 피렌체의 문약화文弱化를 지적하는 것이다. 『국가와 폭력』, p. 170 참조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