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경 토지소유관계를 통해 본 조선후기사회
- 최초 등록일
- 2012.12.02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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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토지소유관계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조선시기 토지소유관계 개관
1) 토지소유관계란?
2) 사적 토지소유권의 발달
3) 농업경영의 변화
3. 토지소유관계의 연구 동향
1) 연구동향
2) 경영형 부농론
3) 소농사회론
4. 토지소유관계의 주요 쟁점들
1) 국가적 토지소유론과 사적 토지소유론
2) 소농경영의 안정화 시기
3) 궁방전 양안의 해석
5. 논쟁의 의의
- 자본주의 맹아론과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의 의의와 한계
6. 나가며 - 보고서를 작성하며서 느낀 점
본문내용
1. 들어가며
토지소유관계만큼 조선의 사회와 경제의 단면을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주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조선사회는 농업을 기본으로 삼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의 운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토지소유관계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발전 과정 또한 알아볼 수 있는데 이것에 관해서는 상당한 입장차가 있다.
즉 1960년대 김용섭을 필두로 그 전의 정체성론을 극복하면서 조선사회를 중세봉건제사회로 규정하고 조선의 사회경제 변화를 농업기술의 발달, 농업경영, 토지소유관계의 변화 등을 분석하였고 그러한 연구 결과 나타난 내재적 발전론에 기인한 자본주의 맹아론으로써 우리나라의 역사 발전 역시 세계사적 보편성을 띄면서 조선후기사회는 중세의 해체적인 요소가 보이면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1980년대 이영훈은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하면서 조선의 사회는 세계사적 보편성이 나타나지 않았고 자본주의의 맹아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중 략>
6. 나가며 -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느낀 점
지금까지 토지소유관계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미약하게나마 조선후기사회의 단면을 살펴보았다. 이번 보고서는 나로 하여금 과연 조선후기사회는 근대지향적인 사회였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느낀 것은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같은 사료를 분석 각기 다른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는 것이다. 즉 용동궁양안을 통해 김용섭은 경영형부농을 도출하였고 이영훈은 국가적 토지소유를 도출하였던 것이다. 또한 소농경영의 안정화라는 용어를 통해 보았을 때도 기본적으로 소농경영의 안정화가 지주제의 발달을 가져왔다는 것에 두 학자 모두 동의하지만 김용섭은 이러한 소농경영의 안정화에 따른 지주제의 발달이 농민층의 양극분해를 가져왔다고 본 반면, 이영훈은 이러한 소농경영이 안정화 된 후 농민층의 양극분해가 아닌 영세균등화를 가져왔다고 보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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