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우두법과 정치학 논평문
- 최초 등록일
- 2012.10.20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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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양과목 시간에 작성한 논평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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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 글은 초기 근대 과학 기술 정착의 대표적인 사례인 우두법의 교과서적 해석이 잘 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해석은 ‘조선말까지 두창이 끔찍하게 유행하였으며, 전통의술은 무력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신적인 방법에 의존하였다. 하지만 선각자 지석영의 우두법 도입으로 인해 두창 예방에 한줄기 빛이 보였다’이다. 이러한 해석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저자는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로 전통 의술이 무력했으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신적인 방법에 빠져있었는가에 대해, 두 번째로 선각자 지석영이 우두법의 도입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는지,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된 계기와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세 번째로 우두법에 반대한 사람들의 논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를 살펴보자. 저자는 전통 의술이 무력하지 않았으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신적인 방법에 빠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 근거로 인두법과 한의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종두예방에는 우두법과 인두법이 있는데, 그 중 우두법이 도입되기 전에, 조선에는 인두법이 널리 퍼진 상태였다.(1886년 알렌의 기록에 서울 거주자 100명 중 60-70명이 인두법을 받음) 즉, 종두예방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던 상태였다. 또한, 한의학의 경우 종두에 걸린 자들을 치유하는 몫과 우두접종 후 생길 수 있는 여러 잡증에 대해 처방을 제시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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