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부 지도전쟁
- 최초 등록일
- 2012.10.07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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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명의기억:지도 영상 감상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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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일본은 천황제의 유지를 위해 많은 침략의 기록을 삭제한다. 그 당시 일본은 침략을 위한 지도를 제작하고 있었다. 근대 역사 속에서 지도는 세계 재패의 무기였다. 일본 법륭사에 ‘오천축도(五天竺圖, 1384년)’ 라는 일본 최고(最古)의 세계지도가 있다. 불국정토를 묘사한 이 지도를 통해 대륙의 정보로 지도가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에서 일본은 황금의 땅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752년 일본 동북지방에서 금채굴이 시작되어, 그 금으로 대륙과 교류를 하였기 때문이다. 일본 서부지방 이키츠키지마에는 포르투갈이 왔다갔던 흔적이 남아 있다. 비밀미사를 드리는 가톨릭 신앙이 존재한다. 포르투갈 인들은 일본 정부의 반발로 포교활동을 그만두고 떠나게 된다. 이후 네덜란드 인들이 진출하여, 일본에 ‘난학(蘭學)’ 열풍이 생겨난다. 특히 그들의 세계지도가 충격적이었다. 일본은 네덜란드의 지도를 모방하였고,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게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관용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문화, 인종, 정보 등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특히 ‘청어’를 수출하면서 해운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시기 네덜란드의 항해술과 조선술은 최고였다. 이 네덜란드를 아시아로 불러들인 결정적인 요인은 ‘메르카토르 지도(1508년)’라는 항해지도 한 장이었다. 이후 대영제국이 일본으로 진출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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