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탐구_-_부소산성_내_유적
- 최초 등록일
- 2012.05.22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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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답사관련 유물 유적지
목차
1. 삼충사(三忠祠)
2. 낙화암(洛花巖)
3. 고란사(皐蘭寺)
본문내용
1. 삼충사(三忠祠)
백제의 충신이었던 성충·흥수·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성충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충신으로, 좌평으로 있으면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애쓰다 옥중에서 단식을 하다 죽었다. 흥 수는 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탄현을 지키다 대신들의 반대로 지키지 못하고 결국은 멸망하였다. 계백은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결사대 5,000여명을 뽑아 지금의 연산인 황산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1957년 지은 이 사당은 1981년 다시 지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재 때 삼충제를 지내고 있다.
2. 낙화암(洛花巖)
충남 부여 백마강변의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 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 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 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진 곳이라 한다. 『삼국유사』, 『백제고기』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었다고 하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고쳐 불렀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궁녀들의 원혼을 추 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