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5.16 군사 쿠데타
- 최초 등록일
- 2012.03.04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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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5.16군사쿠데타,박정희,주동세력,발생배경,현대사
목차
1. 진행 과정
2. 주동 세력의 성격
3. 발생 배경
4. 박정희 군사 정부, 무엇을 했나?
5. 평가
6. 참고 문헌 및 참고 사이트
본문내용
1. 진행 과정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육군 소장의 지휘를 받은 해병대, 공수 부대, 6군단 포병 부대 등 250여 명의 장교와 사병 3천여 명으로 구성된 쿠데타군이 일제히 수도 서울 진입을 개시하였다. 주력 부대인 해병대와 공수 부대가 한강대교를 지키던 헌병대의 저항을 간단히 물리치고 다리를 건너 새벽 3시, 용산 육군 본부를 점거하였다. 다음 서울 시내로 진격하여 중앙청을 비롯한 주요 정부 기관과 남산 KBS 방송국 등을 새벽 4시 30분까지 점령하였다. 쿠데타군은 새벽 5시부터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군사 혁명’이 일어났으며 혁명군이 군과 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선포했다. 쿠데타군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한 뒤, 오전 9시 전국에 비상 계엄1)을 선포했으며, 오후 7시 정권 인수를 발표했다.
발발 당시 유엔군 사령관(미8군사령관 겸직) 카터 B. 매그루더(Carter B. Magruder)와 주한 미 대사 마셜 그린(Marshal Green)은 쿠데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한국군이 합법적으로 수립된 장면 정부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미국 정부의 의견이 아니라, 개인적인 입장 표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 이러한 성명 조치 이외에도 매그루더 사령관은 이한림 장군2) 휘하의 제1군을 동원3)하여 쿠데타군을 진압하려 했으나, 윤보선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장도영 육군참모총장 역시 쿠데타를 반대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으나, 쿠데타 발발 당일 소집한 군 수뇌부 회의에서 군사령관들의 장면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쿠데타군에 가담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