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관광지] 스페인의 그라나다 지방
- 최초 등록일
- 2012.02.16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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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그라나다의 지명
그라나다의 지명은 `석류`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인 `그라나다(Granada)`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도시 전체의 모습이 석류 열매가 터지는 것과 같이 생긴 것에 유래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명에 걸맞게 지방에는 석류가 무척 많이 자라고, 그라나다 시의 문장에도 석류가 그려져 있다.
1. 찬란한 이슬람 문명의 마지막 무대
그라나다의 역사는 그대로 스페인의 중세사이자, 800년 동안 지속된 국토회복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라나다는 711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들인 무어 족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해 온 이후 11세기까지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았으나, 새로운 이슬람 왕조가 들어서면서 일약 번성기를 맞이했다. Nasrid 왕조가 지배한 250년 동안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꽃핀 이슬람 문화의 마지막 무대였다. 물을 소중히 여기던 아랍인들의 놀라운 관개 기술로 농업이 발달했으며, 인근에서 채굴되는 금, 은, 구리 등을 이용한 각종 금속 공예, 비단을 생산하는 직물 산업 등이 스페인에서 가장 발달했다.
La Alhambra의 역사
1237년 Nasrid 왕조 초대 왕인 무하마드 1세에 의해 그라나다 왕국이 건국된 후, 왕은 알람브라 성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역대 왕들에 의해 성 안에 궁전이 건설되어 14세기 7대왕인 유수프 1세(1333-1353) 시대에 지금의 Nasrid 왕조 궁전이 완성되었다. 이 시대에 번영한 그라나다 왕국은 큰 시장과 모스크(이슬람교의 예배당)를 갖춘 대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14세기 후반 Nasrid 왕국은 카스티야 왕국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발 빠르게 카스티야를 공격했지만, 곧 강력한 반격에 직면하여 전쟁은 15세기말까지 사이를 두고 계속되었다. 결국 1469년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가 결혼함으로써 두 왕국이 통합되어 강력한 가톨릭 왕국이 형성되었다. 1492년,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여왕의 Reconquista가 감행되어, 내란으로 분열된 에스파냐 최후의 이슬람 왕조인 그라나다 왕국이 점령되었다. 이 때, 알람브라 궁전은 전쟁 없이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여왕에게 양도됨으로써 그 화려하고 찬란한 자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라나다의 미술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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