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書『삼국사기(三國史記)』True or False
- 최초 등록일
- 2011.12.17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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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김부식의 생애
3. 삼국사기의 체제와 구성형태
4. 역사인식과 관점 비교론
5. 나가는 말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한국 사학사에서 김부식의『삼국사기』와 일연의『삼국유사』는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이며, 흔히 두 사서를 말할 때『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士官)에 의하여 쓰여진 정사이며 그 체제나 문장이 정제된 데 비해,『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쓰여져 체제나 문사(文辭)가『삼국사기』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대한 논의는 현대뿐만 아니라 근대 사학자들에 의해서도 논의되었었다. 이번 발표에서는 집필자였던 김부식의 생애와『삼국사기』에 대한 대표적인 논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며, 끝으로 이 논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토론해 보고자 한다.
2. 김부식의 생애
1) 집안 내력
『고려사(高麗史)』열전에서는 그의 조상이 신라의 왕족이었다고 전한다. 이는『동문선(東門選)』에 실린 그의 손자 김군수(金君綏)의 시「동도객관(東都客館)」에 ‘무열왕손문열가(武烈王孫文烈家)’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감안할 때, 무열왕계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김부식의 증조부는 고려 태조가 경주를 설치할 때 ‘주장(州長)’으로 삼았던 김위영(金魏英)으로 알려져 있다. 김위영의 아버지는 국자제주(國子祭酒)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지낸 김근(金覲)이라고 한다. 그의 생몰연대는 확실치 않으나,『고려사』박인량(朴寅亮)열전에 보면, 1080년(문종 34)에 김근이 박인량 등과 함께 송나라에 사행(使行)을 가서 시문으로 명성을 떨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같은 책의 선거지(選擧志)에는 그가 1086년(선종 3) 5월에 예부시랑으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선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들로 미루어볼 때, 김근은 문장을 잘 짓기로 당대에 이름이 난 인물인 듯하고, 과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그 자신 또한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참고 자료
강종훈,〈김부식〉《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열전》1 돌베개 2003
이우성․강만길 편,《한국의 역사인식》(상), 1976, 창작과 비평사
李載浩 역,《삼국사기》 광신출판사 1993
鄭求福,〈김부식의 생애와 업적〉《정신문화연구》82, 2001, {부록;김부식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