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 최초 등록일
- 2002.10.11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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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명성왕후는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자랐으며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의 천거로 왕비로 간택되어 1866년(고종 3) 한 살 아래인 고종의 비로 입궁하였다.
소녀시절부터 집안 일을 돌보는 틈틈이 (춘추 春秋)를 읽을 정도로 총명했다고 하며, 수완이 능란한 그녀는 수년 후부터 곧 왕실정치에 관여하여 흥선대원군의 희망과는 달리 일생을 두고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불행을 예고했다.
둘의 사이가 그렇게 갈라진 이유는 궁녀 이씨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 완화군(完和君)에 대한 대원군의 편애와 세자책립 공작 때문이라 하나, 그 배후에는 민씨를 중심으로 한 노론(老論)의 세력과 새로 들어온 남인(南人)과 일부 북인(北人)을 중심으로 한 세력간의 정치적 갈등이 작용해서 였다는 것이 더 정확할것이다.
명성황후는 온갖 방법을 이용하여 흥선대원군을 정계에서 손을 놓게 정치공작을 하였으며 마침내 대원군의 정적(政敵:趙成夏)을 중심으로 한 趙大妃 세력, 趙斗淳·李裕元 등 노대신 세력, 金炳國을 중심으로 한 안동김씨 세력, 대원군의 장자 載冕과 형 李最應 세력 및 崔益鉉 등 유림세력)과 결탁하고, 최익현의 대원군 규탄 상소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을 하야하게끔 하여 양주(楊州) 곧은골[直谷]에 은퇴시키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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