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 개론
- 최초 등록일
- 2011.09.09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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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 1 장
자각 운동과 사회적 침입
플랫에 따르면 마리보적 존재란 매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인간이다. 중요한 것은 선이 아니라 순간이며, 마리보적 존재는 어느 의미에서 역사를 가지지 않는다.
역사적 시간 감각의 결여
20세기 문학을 뚜렷이 부각시켰던 ‘종말감’이 대중의 상상력에 침투하면서 악몽이나 죽음의 희구에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를 제시하면서 전위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표현했던 시적 예언을 실현시켰다.
60년대의 정치적 격동 이후 미국인들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에만 몰두하였다.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생활을 개선할 희망을 갖지 못한 채 중요한 것은 정신적 자기 개선이라고 스스로 확신하였다. 이들은 감정을 교류하고, 건강식품을 섭취하고, 발레나 벨리댄스를 강습 받고, 동방의 지혜에 몰두하며, 조깅을 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기술을 배우며, ‘쾌락의 공포’를 극복한다.
1973년에 개봉된 우디 알렌의 영화 ‘슬리퍼’는 70년대의 분위기를 정확히 포착하였다. 이 영화는 “정치적 해결이란 없다”는 메시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한다. 자신이 무엇을 신봉하는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알렌은 “나는 섹스와 죽음-평생에 단 한 번만 오는 두 가지 경험-을 믿는다”라고 선언한다.
순간을 위한 삶이 지배적인 정열인데 이는 선대나 후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삶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나와 미래를 뻗어가는 연속된 세대에 속해 있다는 인식인 역사적 연속감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 톰 울프는 새로운 나르시시즘을 ‘제 3의 대각성’ 축제 같은 무아지경의 광신의 폭발로 해석하였다. 호간과 울프는 집단적 나르시시즘은, 주요한 인간만을 위해 살고, 우리 자신의 ‘사적인 일’에만 전념하며, 우리 스스로 퇴폐의 감식가가 되고, 초월적인 자기 몰두‘를 함양한다는 것은 이치에 닿는다.
평등적이고 의사역사적인 내용은 과거의 가장 급진적인 내세 종교들마저도 사회 정의의 희망과 이전의 세대와의 연속감을 나타내었음을 암시한다.
피터마린은 “우리들 사이에 등장하는 세계관은 순전히 자아에만 집중되며, 개인의 생존을 유일한 선으로 삼는다”라고 적고 있다.
“톰 울프는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나 후손들의 삶을 영위해주는 것처럼 살아왔다.”고 관찰하며 새로운 나르시시즘의 성격 규명에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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