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론 `나르시시즘으로 해석`
- 최초 등록일
- 2011.09.09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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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의 문제를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일 듯. 일상적으로 나르시시즘을 공주병적인 징후를 보이는 자아도취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르시시즘은 인간의 성격 발달에 있어 보편적인 단계이다. 모든 인간이 유아기에 경험하게 되는 원초적인 나르시시즘이란, 자신의 현재 모습과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가 일치하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이라는 것. 주체의 분열이나 대상화된 자기 인식이 발생하기 이전에 형성되는, 아주 행복한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이란 주체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근원적인 체험의 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의 단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아버지의 이름이 개입하면서 와해되어버리고,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와 현실의 자기 모습 사이에서 분열과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르시시즘은 자기 도취와 자기 소외의 교차지점이자 문턱이라 할 수 있다.
김영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나르시시트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직업이 있더라도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사귀던 여자가 딴 남자와 결혼해서 유학간다고 통고를 해와도 대학교 교지에 글 써주고 원고료로 담배나 책 살 궁리를 하거나, 팔라는 자동차는 안 팔고 집에 들어와 게임에 몰두한다. 무능하다고는 할 수 없고 의도적으로 사회생활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사회적 (재)생산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신의 모습을 못 견뎌하는 사람, 또는 사회적인 생산행위에 모종의 죄의식이나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인 생산을 거부하는 지점은 아니지만 최소화하려는 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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