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왜성
- 최초 등록일
- 2011.07.21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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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울산왜성과 축조자 가토기요사마에 대한 자료
목차
1. 울산왜성
2. 가토 기요마사
3. 울산왜성전투
본문내용
1. 울산왜성
울산왜성(蔚山倭城)은 울산광역시 중구 학성동에 있는 성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壬辰倭亂)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加藤淸正) 쌓은 성이며, 1997년 10월 30일 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축성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은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도산성(島山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조선 후기에는 모습이 시루와 같다고 하여 증성(甑城)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었으며, 이에 따라 주변 마을도 증성리라고 불렸다.
1) 울산왜성의 역사
정유재란 당시, 조선과 명의 연합군에 의하여 충청도에서 진로를 가로막힌 일본군은, 1597년 9월 16일 한반도의 남해안으로 군사를 물려 방어에 나섰다. 이때에 일본군은 남해안 일대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수의 성곽을 건조하였다. 울산왜성 역시 이때에 건조된 성곽 중의 하나로, 가토 기요마사가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축성이 시작된 것은 1597년 10월 혹은 11월로 추측되며, 오타 가즈요시(太田一吉)의 감독 아래, 모리 히데모토(毛利秀元)와 아사노 요시나가(野幸長) 등 주고쿠 지방(中地方)의 다이묘들과 가토 기요마사의 병사 일부가 공사를 맡았다. 성벽의 자재 중 일부는 울산 병영성 1987년 7월 18일 사적 제320호로 지정되었다. 1397년(태조 6)에 진(鎭)이 설치된 이 지역은 경상좌도병마도절제사영(慶尙左道兵馬都節制使營)이 있었던 곳으로, 오랫동안 나라의 동남쪽 해안방어를 담당하였다.
참고 자료
노성환,「일본에 있어서 가토 기요마사의 임란전설과 신앙에 관한 연구」, 울산대학교, 2009년
심봉근,『한국남해안연안성지의 고고학적 연구』, 학연문화사, 1995년
채현희,「가토 기요마사와 울산성 전투에 대한 고찰」, 단국대학교, 2010년
kbs역사스페셜 제작팀, 『역사스페셜 6권』,효형출판사,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