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의 전개과정
- 최초 등록일
- 2011.04.17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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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대학교에서 A+ 받은 자료입니다.
한민족 반 만년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제국, 드넓은 만주 벌판을 호령했던 대제국 고구려. 약 1300년이 흐른 현재, 민족에게 그늘이 드리워질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강대했던 고국 고구려를 부르짖으며 약소국의 설움을 한탄했고, 당대의 고구려를 열망했다. 허나 그런 위대한 고구려도 점차 잊혀져 가는 것이 현실이다. 하여 본문에서는 우리의 기억 속에 고구려의 기상을 불러 일으키고자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글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첫째, 고구려란 어떤 나라였는지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고자 한다.
둘째, 고구려의 역사를 단계별로 나누어 대제국 고구려가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셋째, 강력한 군사력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서 우리가 모르고 있던 고구려의 문화적 우수성과 우월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제 1장 - 머리말
제 2장 - 고구려사 소개
제 3장 - 건국
제 4장 - 성장과 위기
제 5장 - 전성기
제 6장 - 쇠퇴와 멸망
제 7장 - 고구려 문화의 특징
제 8장 - 맺음말
본문내용
백제와 북방 민족의 양면 협공을 견디던 고구려는 4세기 후반에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 고구려의 내부적인 개혁을 통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성하고 중흥을 시도하였다. 그로 인해 전연(前燕)을 멸망시킨 전진(前秦)과 우호관계를 맺고 새로 전래된 불교를 받아들여 이를 국가적인 종교로 삼게 되고, 태학(太學)을 세워서 관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삼았다. 한편으로는 율령(律令)을 반포하여 집권적인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와 같이 고구려가 국가체제를 정비하던 시기는 바로 백제가 평양성을 공격했던 근초고왕(近肖古王) 때로, 백제의 전성기 시절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5세기에 이르러서는 적극적인 대외 팽창을 꾀하여 대규모의 정복 사업을 단행하였다. 4세기 말 고구려는 서쪽으로 후연(後燕)을 공격하여 요동을 모두 차지하고 요서의 일부 또한 확보하였으며, 이어서 등장한 북연(北燕)과도 친선관계를 수립하였다. 북쪽으로는 부여 및 숙신(肅愼), 비려(碑麗)를 복속시켰으며, 남쪽으로는 백제를 쳐서 한강 이북을 빼앗아 위축시키고, 왜(倭)와 가야(伽倻)의 침공을 계기로 신라를 보호국화하는 한편 바다를 건너 침공해 온 왜를 섬멸했다. 또한 가야를 공격하여 전기 가야 연맹을 해체시키기에 이르렀다. 동으로는 읍루(挹婁)를 정벌하였고, 동예(東濊)를 완전히 병합하였다. 또한 당대의 왕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영락(永樂)이라는 연호(年號)를 써서 중국과 대등함을 과시했다.
이 후 5세기 초에 고구려는 대흥안령 일대의 초원 지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중국 대륙의 남북조와 각각 교류하면서 대립하고 있던 두 세력을 조종하는 다면(多面) 외교 정책을 써서 중국 대륙을 견제하였다. 또 427년(장수왕 15)에 평양성(平壤城)으로 수도를 옮겼고, 이에 백제는 큰 위협을 느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신라와 433년에 동맹을 맺어 고구려 세력에 대항코자 하였다.
4세기 후반 고구려는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하였고, 이와 함께 신라를 쳐서 죽령(竹嶺)까지 차지하여 죽령 일대로부터 남양만을 연결하는 선까지 그 판도를 넓히는 적극적인 남하 정책을 펼쳤다. 이와 같이 계속된 대외 팽창으로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정치 제도를 완비한 강대국을 형성하여 중국의 제국들과 거의 대등한 지위에서 힘을 겨루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