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를 다녀와서, 한국의미
- 최초 등록일
- 2010.10.27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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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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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를 다녀와서
단 하나의 문화재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가정했을 때 선택했던 곳은 영주의 부석사 였다. 문화재에 관심 없었던 나로써는 많이 들어보기만 했던 부석사란 이름을 1박 2일을 통해 다시 듣게되었다. 어떤곳인가 검색해보던 도중에 문득 한번 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수업 자체를 한국사상에 대해 배우고 있고, 이곳을 답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같은 수업을 듣는 곽유신, 이민태에 선택도 큰 몫을 했지만, 국보와 보물로 가득찬 부석사가 물론 궁금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선택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해 지금부터 설명해보고자 한다.
<부석사란 사찰>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문무왕 16년(676)2월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현재로서는 그 때 당시 부석사의 생김을 알 수 있는 유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부석사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져 있는 [삼국사기]나[삼국유사]를 보면 부석사의 유래를 대충은 감지 할 수 있다.
이 사찰의 유래를 보자면 이 절을 창건한 의상대사의 제자인 신림이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여서 부석사의 화엄종을 크게 중흥시키었다. 또,규모면에서도 크게 기본구조라 할 수 있는 대석단과 석등, 석룡, 장대석, 석탑 등이 경문왕 무렵에 변모하여 건립되었다. 특히 대석단은 불국사, 인원사, 망해사등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본구조물이다. 그리고 부석사가 위치한 태백산은 신라하대에 대석단 위에 가람으로 많은 대중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변하였고 승려가 되기 위해 처음 출가하는 곳으로 유명해질 정도로 고품있는 절로 전해진다. 이절의 주지스님이 고려시대에 원웅대덕이라는 사람인데 대장경을 인쇄하여 부석사나 안국사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많은 건물이 중창되거나 창건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는 부석사가 재탄생 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에 특히 부석사를 많이 수리했기 때문이다. 이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성종21년에 조사 당을 중수하고 성종24년 (1493)에 조사 당을 단청하고 명종 10년(1555)때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성조 6년(1573)조사당 지붕을 개수하였다. 그 외에는 많이 중수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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