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체육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0.05.16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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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에 행해진 체육에 대하여
조선의 사회배경
교육제도와 체육
신분제도를 먼저 살펴보고, 이를 통해 형성된 조선의 체육관과 체육방법 및 방법에 대한 상술을 한 보고서입니다.
목차
조선시대 시대배경
교육제도와 체육
신분제도
조선시대의 체육의 신체관 및 사상
조선시대의 체육방법
본문내용
1.조선시대 시대배경
조선은 고려 말에 유입된 성리학을 정치사회의 지배 윤리로서 재편성하는 시기이며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불교에 대한 심각한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따라서 건국 초기에 있어서 가장 우선 사업은 종래 불교 사상에 젖어 있던 사회 질서와 윤리 규범을 주자학적으로 재편성하는 것이었는데 이후 일종의 사대주의 현상이 야기된다.
조선 왕조를 이룩한 주도 세력은 신흥 사대부 세력과 무장 세력이었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안으로는 농장의 확대에 따른 사회적 모순의 증대로 백성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고, 밖으로는 이민족의 침략이 잦아 민족적 시련이 가중되었다. 이때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해 등장한 무장 이성계가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려는 신흥 사대부 세력과 힘을 합해 조선왕조를 세웠다. 정치적 실권을 잡은 이성계는 전제 개혁으로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고 국가 재정과 신흥 사대부의 경제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이들 신진세력은 불교를 배척하고 신흥사대부가 수용한 성리학을 사회 지도 이념으로 삼았다.
(2)생활, 풍속적 놀이의 발견
조선시대의 생활, 풍속적 놀이는 이전시기에 비해 매우 다양해지는 등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농경세시적 놀이들이 생겨났고, 역사적 경험이나 풍속에서 비롯된 각 지방의 독특한 놀이들이 등장하기 도 하였다. 게다가 남성위주의 놀이를 벗어나 여성위주의 놀이도 성행하였고, 풍속적 놀이 이외에도 순수한 놀이차원에서의 아이들의 놀이도 많이 생겨났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신분에 따른 놀이의 계층화도 이루어졌다 양반사대부들은 투호를 유교적 수단으로 즐겼으며, 평민들은 장치기같은 양반들의 놀이를 수용하여 즐기거나, 축구처럼 이전시대부터 있었던 놀이도 즐겼다.
▷새로운 놀이의 출현
조선시대 이전 시기의 문헌에 보이지 않던 농경세기적 놀이들이 출현.
줄다리기- 문헌에서는 인색희, 조리희, 시구희 등으로 기록 사람들이 새끼줄은 양끝에서 잡고 힘을겨루는 놀이
고싸움- 전남 광상군 대초면 칠석리 옻돌 마을에서 해마다 정월 10일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 행하는 놀이이다. `고`는 옷고름이나 노끈의 한 가닥을 길에 늘여서 둥그런 모양을 맺는 것을 말한다.
쇠머리대기 -남성들을 위주로 행해진 매우 격력한 놀이로서 승패에 따라 풍년이 결정된다고 여겨 놀이 끝부분에서는 참가자와 구경꾼의 구별 없이 참여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