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에 관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0.05.12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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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나일본부설에 관한 레포트
목차
⑴ 임나일본부설의 내용
⑵ 임나일본부설의 성립과 영향
(3) 근거자료
(4) 임나일본부에 대한 다양한 학설
본문내용
⑴ 임나일본부설의 내용
: 일본의 大和朝廷이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가야, 백제, 신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직접 지배했다는 주장. 결국 고대의 한반도 남부 전체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논리가 되므로 ‘南鮮經營說’이라고도 함.
⑵ 임나일본부설의 성립과 영향
: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구는 17세기 초이래 소위 일본의 국학파들에 이해 주목된 이래 19세기 후반의 일본의 제국주의화와 더불어 ‘문헌고증학자’들에 의해 정치하게 부연 설명, 정설화되어 ‘日鮮同祖論’과 더불어 일제의 한국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 어느 정도 수정되기는 하였지만 현재까지도 그 기본 내용은 일본인들의 의식 저변에 잔존.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 조장에 기여하고 일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됨.→침략이 아니라 복귀라 주장.
(3) 근거자료
1)《日本書紀》 ; 720년
① 《日本書紀》卷第9 氣長足姬尊 神功皇后紀
*. 47(247→367)년 ; 백제왕이 朝貢使를 파견했으나 신라가 중간에서 탈취, 千熊長彦(치쿠마 나카히코)를 보내 재발할 경우 신라를 응징하겠다며 경고
*. 49(249→369)년 ; 荒田別·鹿我別을 파견→卓淳國에 전진기지 설치→7국 정벌(가야지역. 이 때 대화정권은 가야전체를 공략해 임나일본부 설치)
*. 52(252→372)년 ; 백제왕이 久氐를 일본에 파견, 영원한 복속 맹세. 七支刀 헌상.
→연대는 편자의 착오로 인정. 120년을 끌어내림(2주갑인상설). 근거는 칠지도의 제작연대와 대비한 것. 泰和四年을 東晉의 太和4년(369)으로 간주. 神功 52년은 칠지도를 헌상한 연대→369년 칠국정벌을 기념해 백제에서 만들어 372년 헌상한 것으로 설명.
② 자료의 문제점 : 《일본서기》는 720년 천황의 권위가 확립된 이후 천황가를 미화하기 위해 편찬된 역사서. 신빙서에 대해 의문이 제기. 후대의 윤색도 적지않게 포함. 특히 5세기 이전 기록은 일본학계에서도 신화적 전설로 간주. ‘일본부’라는 명칭부터 모순. ‘일본’이라는 국호는 7세기경에 비로소 성립. 기년이 2週甲(120년)이 인상되어 있다는 점. 同時期에 편찬된 《古事記》에는 이와 관련되는 기록이 없음⇒《일본서기》를 전적으로 신빙하는 것은 문제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