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 최초 등록일
- 2010.04.09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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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등소평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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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얼마 전 중국인친구에게 모택동은 너의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나고 물었을 때 중국의 역사중 위대한 인물 중 하나라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그럼 등소평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부정적으로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등소평은 제 2의 중국을 만든 작은 거인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등소평은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경제건설의 욕구를 배경으로 현실주의적인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였다. 이에 따라 모택동의 혁명사상 을 우선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계승을 열망하는 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흑묘백묘론을 주창하며 실용주의 노선의 경제정책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등소평의 사회주의가 중국에 밝은 빛과 찬란한 꿈만을 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등소평은 경제개혁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얻었지만 그에 비해 정치개혁 부문에서는 손실이 많았다. 등소평은 대외개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지만 서방의 정치제도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등소평은 `4개의 기본원칙`을 이야기하며 개방의길을 선택하지만, 정치와 사회적 안정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념적으로는 극히 보수적인 노선을 걸었다. 이로 인하여 중국의 경제개혁은 거대한 성과를 거두면서도 앞으로 갈수록 더욱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사회주의는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는 크게 기여했지만 당료와 관료의 부정과 부패, 황금만능주의와 대중의 도덕적 타락이라는 고치기 어려운 병폐를 낳았다. 정부가 고위 관료를 사형시키면서까지 부정부패를 척결하려 했으나 해묵은 뿌리깊은 부패는 뽑힐 줄을 모르고 있다. 지금 중국에는 벼락부자가 1억 명이라는 속설이 있다. 그들은 벤츠 같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호의호식하지만 내륙으로 갈수록 가난의 정도가 심해서 빈부 격차는 미국을 따라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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