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의 일생 ‘나는 사랑하고 일했다’
- 최초 등록일
- 2010.03.15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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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많은 도움되세요^^
목차
1. ‘독일 첩자’ 논란
2.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하라
3.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내가 본 코코 샤넬
본문내용
‘조국을 배신한 매국노’에서부터 ‘여성 해방의 선두주자’까지
20세기 여성 패션에 커다란 혁신을 불러일으키면서 패션 제국‘샤넬’을 이룩한 가브리엘 샤넬. 코코라는 별칭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는 그녀의 일생은‘사랑하고 일했다’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살아온 샤넬은 독일을 위해 일한 첩자라는 의혹과 여성 해방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혁명가라는 두 가지의 상이한 꼬리표가 함께 붙어 다닌다. 이러한 결과는 그녀가 살던 시대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흥미로운 소재라 생각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녀가 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리고 그녀가 세계 속에 이뤄낸 성과를 알아보겠다.
1. ‘독일 첩자’ 논란
-독일을 위한 비밀작전에 개입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샤넬의 나이는 57세였다. 그녀는 13살 연하의 독일군 장교 한스 귄터 폰 딩클라게, 본명보다 슈파츠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과 사실상 동거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1940년에 프랑스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자 패전국 프랑스에선 친독계열의 비시 괴뢰정부가 들어섰다. 당시 프랑스인들 중에는 독일군에 대항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며 고문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자가 부지기수였는데 샤넬은 독일군 장교와 애인관계로 지내면서 그의 비호아래 타락적인 생활을 보냈다. 이들의 관계는 일종의 비밀 작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작전명이자 암호명은 ‘모자 견본(모델의 모자로도 알려져있다.)’. 윈스턴 처칠이 1943년 11월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샤넬은, 스페인으로 가서 처칠이나 영국 대사를 만날 작정이었다(샤넬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thelife/120062900738
코코 샤넬, 앙리 지넬 지음, 시대정신 출판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57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