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원론> 사법부의독립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하게 유지되는가
- 최초 등록일
- 2009.09.28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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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치학원론> 사법부의독립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하게 유지되는가
목차
Chapter 15 헌법, 법률과 사법부
사법부의 독립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하게 유지되는가?
본문내용
Chapter 15. 헌법, 법률과 사법부
(6) 사법부의 독립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하게 유지되는가?
(한국의 최근 사례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정치 역사 속에서 ‘사법부의 독립’은 정확히 유지 되어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에 대한 사례로 역대 몇몇 대통령들의 취임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 졌던 3차례의 이른바 ‘사법파동’을 에로들어 설명해 보겠다.
`사법파동`이란 사법권의 독립과 개혁을 요구하며 일어났던 소장판사들의 집단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제1차 사법파동의 내용을 살펴보면 1971 7월,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가 판사들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구속사유는 변호사로부터 항공료, 숙박비, 술값 등 97000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판사가 부정한 이익을 제공받은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으나 종래 불문에 부쳐지던 관행을 문제 삼아 구속영장을 청구한 당시 검찰의 조치는 사법부에 대한 탄압을 의도한 것이었다. 이에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37명이 검찰의 처사에 항의하며 사표를 제출했다고 전국 각지의 법관들이 사법권의 독립을 외치며 사표를 내어 다수의 법관이 사표를 제출했다.
제2차 사법파은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후, 5공화국 당시의 사법부 수뇌부를 재임명하자 소장판사들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서에 서명, 이를 발표한 것이다.
제 3차 사법파동은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서울민사지법 소장판사 40명이 사법부의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대법원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