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발레-루이14세와 발레
- 최초 등록일
- 2009.09.17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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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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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 론-
-본 론-
(루이 14세 시대의 오페라와 음악에 대해서)
(루이 14세 시대의 발레와 정치의 관계 )
(베르사유궁전과 발레)
-결 론-
본문내용
-서 론-
발레는 이탈리아어로 ‘춤춘다’라는 뜻인 발라레(ballare)로부터 유래 되었다. 당시의 무언극과 가면극의 춤을 구성한 당스 피귀레라고 하는 기하학적인 형태로 무용수가 모여서 추는 춤, 발리 또는 발레티라는 일종의 사교 댄스, 극적인 성격을 갖춘 무대무용인 브란디, 모리스카라는 즉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무대무용 등 4가지 춤이 혼합하여 발레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발레는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탄생한 것으로, 피렌체에서 출생한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의 왕비가 되어 프랑스 궁정에 조국 이탈리아의 궁정발레를 소개하였고, 이것이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581년 파리의 앙리 3세의 궁정에서 상연된 《왕비의 발레 코미크》가 기록상으로는 최초의 발레로서 중요시된다. 이 발레의 안무는 이탈리아 출신인 베르조조소인데 그가 정의를 내린 바에 따르면, 발레란 여러 악기의 합주 아래 몇 사람이 추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용이라 하였고,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발레와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베르조조소가 안무한 《발레 코미크》의 공연 때에 무용, 음악, 가요, 낭송 등의 종합 무대에 일관된 줄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초기 발레는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연예극과 그 뒤를 잇는 프랑스 궁정 발레에서 발전했다. 당시 왕족과 귀족들의 사교춤은 음악·대사·시가·노래·야외극·장식·의상과 더불어 펼쳐졌다. 17세기 잠시 쇠퇴하기도 했으나 춤에 심취해 자신이 직접 추기도 한 프랑스 왕 루이 14세(1638~1715)는 춤의 예술을 위한 과학적 원리를 확립한단 목적으로 1661년 왕립 춤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같은 해에 몰리에르의 대본과 장 바티스트 륄리의 음악을 사용한 최초의 코미디 발레가 공연되었는데 이 작품에서 춤은 연극의 장에 따라 각각 나누어졌다. 오래지 않아 이는 륄리의 오페라 발레로 이어졌으며 오페라 발레를 공연할 직업무용수를 훈련시키기 위한 학교가 설립되어 왕립 무용 아카데미(또는 왕립 오페라 아카데미)에 소속되었다. 새로 등장한 직업무용수들은 귀족들의 행동거지를 그대로 모방해 춤추도록 훈련받았다. 륄리와 발레 감독 피에르 보샹(1631~1719)의 지도로 발레는 공연 형태를 갖추었다. 그리고 1715년 루이 14세가 죽으면서 궁중발레는 극장발레로 바뀌어 발전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