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숙청(우리나라의 일제 청산문제와 연계)
- 최초 등록일
- 2009.07.05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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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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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도입
2. 프랑스의 反나치 활동
3. 나치 협력자 대숙청
4.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
○ 참고 자료
본문내용
1. 도입
예전부터 한국사를 좋아해서 국사, 근·현대사 과목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 사건으로 듣는 서양사 과목을 들으면서 특히 인상에 남았던 것은 우리는 하지 못한 숙청(청산)을 그들은 해냈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이 다르긴 했겠지만, 일단은 숙청을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프랑스 숙청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다.
프랑스는 나치점령기를 심판과 처단을 통하여 숙청했으며, 그 결과로 매우 선진적인 민주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나치협력자에 대한 처단을 통해 프랑스가 보여준 과거청산의 본보기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자유과 사회정의, 그리고 인권이 참되게 존중받는 민주국가 건설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또한 드골 장군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거의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그를 금세기 최고의 정치지도자 중 하나로 뽑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데는 민족반역자 문제를 준엄하게 처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프랑스를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건설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인류역사상 인간을 가장 괴롭혔다고 볼 수 있는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를 패망시켜 완전히 소멸시킨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역사적 의미가 확실한 만큼, 여기에 봉사했거나 아부하고 시녀 역을 담당했던 반역자들이 심판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처단의 선례는 한국에게 특별히 교훈을 남겨준다. 한국은 해방 후 민족반역자들을 처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지배세력으로 온존시켰기에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가 나치협력자 처단을 기초로 2차 세계대전 후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반면, 한국이 오늘날까지도 진정한 민주주의 제도 수립에 성공하지 못한 까닭은 친일세력 처리를 하지 않았던 현대사에 기인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드골 장군이 반민족적 나치협력자 처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대한 문제는 우리에게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
주섭일 | 사회와연대 | 2004년 08월 30일
프랑스의 대숙청 (드골의 나치협력 반역자 처단 진상)
주섭일 | 중심 | 1999년 04월 01일
세계의 과거사 청산(역사와 기억)
김남섭 | 푸른역사 | 2005년 08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