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이승만 살리기`에 대한 비판과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를 다루고 있는 리포트입니다. 이승만은 건국을 이끈 영웅이 아닌, 남북분단을 초래한 권력자 라는 논조로 쓰여졌습니다.
목차
Ⅰ. 이승만에 대한 상반된 평가 - 독재자 vs. 탁월한 지도자
Ⅱ.「대한민국60년 건국을 말한다」요약
Ⅲ. 이승만은 과연 ‘탁월한’ 지도자였던가?
본문내용
우남(雩南) 이승만은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장작 ‘12년’ 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이와 같은 장기집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승만의 집권의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는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종신집권을 위한 터를 닦았고, 1960년 3․15선거에서 부정을 저질러 권력을 지키려하였다. 때문에 혹자는 이승만을 국내․외적 요인을 이용해 장기 집권화 과정을 촉진시킨 ‘독재자’라고 평가한다.
반면에 ‘이승만은 탁월한 지도력으로 건국 초기인 대한민국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이승만은 1907년에 조지 워싱턴대학을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 전 과정을 마치는 등 뛰어난 학문적 지식을 갖추었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이승만은 6․25전쟁 기간 동안 미국의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해 전쟁을 극복했고, 이후 대한민국 모든 분야의 발전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승만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대한민국 건국61주년을 맞는 2009년에도 합치되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다. 이인수 박사의「대한민국60년 건국을 말한다」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인 이승만을 통해 지금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 나라의 정체성을 깨우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부터 대한민국 건국까지의 과정을 돌이켜보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하고자 한다.
Ⅱ.「대한민국60년 건국을 말한다」요약
ⅰ. 19세기 말 이승만의 구국운동
이승만은 1896년에 시작한 독립협회에 참여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898년 이승만 등 독립협회 급진 소장파 청년들이 주도한 만민공동회운동은 대중연설회와 토론회를 통해 외세 배격과 국권수호를 외쳤다. 이는 시민층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대중시위운동으로, 한국 근대 민주주의 발전의 선구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참고 자료
ⅰ. 단행본
정병준, 『한국현대사 강의』, 돌베개, 2006(초판 8쇄).
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ⅱ. 정기 간행물
강정구,「이승만에 대한 민족사적 평가: ‘되살리기’보다 ‘파헤치기’를 통한 ‘겨레바로세우기’를!」, 한국사회학회, 한국사회학회 1995년 전기사회학대회 발표문 요약집,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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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대한민국60년 건국을 말한다 -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의 국가창업」, 제헌국회의원유족회, 『제헌의원들 - 고난과 역정을 아버지 곁에서 보다』, 2008.
한배호,「제1공화국의 정치체제」한배호 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한국과 국제정치 제4권 1호, 1988.
홍순호,「그의 위대한 업적은 자주적 친미노선에 의한 한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