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사랑과 문학 13. 자유연애와 낭만적 사랑, 이광수의 무정
- 최초 등록일
- 2016.05.22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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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광수의 무정
**이광수 : 최남선과 함께 언문일치의 신문학 운동을 전개 한국 현대 문학의 여명을 이룩한 공헌자로 높이 평가되며, 근대 문학과 현대 문학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고리, 역사 소설의 대중화에 기여한 작가로 평가된다. 이광수는 한국근대문학사에서 선구적인 작가로서 계몽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현실주의, 인도주의적인 작가로 평가 받는다. 단순히 대중에게 영합하지 않고 애국적인 작품, 역사 소설 외에도 가부장제, 조혼풍습 등을 비판하고 사회 계몽과 신교육, 과학 기술 문명을 수용할 것을 주장한 점과 자유 연애론 등 다양한 사상과 신념을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이다. 계몽주의?민족주의 문학가 및 사상가로서 한국 근대 정신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평론가 김현은 '이광수는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족적을 남겼지만, 그의 친일 행위로 한국 정신사에 감출 수 없는 커다란 흠집을 만든 사람 또한 이광수이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당면한 사회적 갈등에 철저히 대응하기보다는 이상적인 설교에만 치중하였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국수주의와 파시즘, 역사 왜곡과 미화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도 있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조선의 대중들을 길들이려 한 기득권층적인 논설이라는 비판도 있다.
*소설가 김원일은 “일제 말기에 그가 보인 친일행각은 따지더라도 그의 문학은 우리의 자산으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면서 “인간의 흑백논리로 단칼에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평하였다.
**생애
-189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4남 2녀 중 넷째 아들. 형 셋이 요절하여 여동생 둘이 있는 가운데 사실상 독자.
-어머니가 총 세 분 =>어린시절 내내 자신의 부모를 부끄럽게 여겼음. 훗날 조혼 풍속을 반대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일찍부터 5살에 글 떼고 기억력 남달랐음. >> 신동소리 들었음. 8살에 한학을 배움
-‘보경’에서 ‘광수’로 개명. 가세가 기울어 담배장사를 했음.
-부모님이 콜레라로 별세해서 고아가 됨.(1902년인 11살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