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용어해설
- 최초 등록일
- 2011.04.01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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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 keyword를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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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
양인(良人) 여자와 천인(賤人) 남자 사이의 자녀는 어머니를 따라 양인이 되도록 한 법. 고려시대 이후 노비의 혼인은 노비끼리만 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양인과 노비의 양천교혼(良賤交婚)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 후기에 와서 양천교혼이 급증하게 되자 이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되 그 자녀의 신분은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만 천인이어도 그것을 따라 천계(賤系)가 되도록 규정했다. 그 결과 군역과 납세의 의무가 없는 천민은 증가하고 군역·납세의 부담계층인 양인은 감소하여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이 문제는 계속 논란을 일으켰다. 조선 후기에는 신분제도가 해이해져 양인이 더욱 감소하고 사회적 신분보다 경제력이 중시됨에 따라 양천교혼이 크게 늘었으며, 특히 경제력이 있는 천인이 양녀와 혼인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영조 7년 종모법이 확정됨으로써 양인신분으로 고정되었다. 이는 양인을 늘려 국가 재정을 키우려는 의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 국내외 정세
1860년대 전후의 조선 왕조는 안으로는 60여년 간 계속된 세도 정치의 폐단으로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졌으며 지방 양반과 관리들에 의해 수취 체제 특히 삼정이 그 상궤를 벗어나 운영됨으로써 민생이 파탄에 바지자 조선 후기 이후 경제, 사회적 변화에 다라 성장하고 있던 농민 의식이 고조되어 각지에서 농민 봉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1862년 진주에서 비롯된 임술 농민 봉기는 삼남 각지에 삽시간에 파급되어갔다. 한편, 이러한 농민 의식을 대변하여 농민들이 추구하는 변화를 지향하며 전통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현실 사회에 비판적인 농민들의 지지를 받은 동학은 조선 왕조의 정치적, 사회적 지배 체제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 왕조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식민지 확보를 목표로 하는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진행되는 시기로서, 일본이 1854년 미국에 의해 문호가 개방되었으며, 중국은 1840년 아편 전쟁에서 영국에게 굴복한 후에 1856년 애로 호 사건의 결과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영국과 프랑스에게 굴복하였고, 러시아는 연해주를 확보한 후 두만강을 넘어 한국으로 침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의 북경 함락 소식은 동일한 문화권인 우리 나라에도 서양인들이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안으로 전통 체제를 위협하는 농민들의 봉기, 밖으로 식민지 침략을 노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접근은 국가의 자주권을 위협하는 것으로서 대내외로 위기에 당면한 당시 조선 왕조로서는 이에 대처하여 정치 개혁이 필수적인 시대 상황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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