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궁궐
- 최초 등록일
- 2009.03.21
- 최종 저작일
-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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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시대 궁궐(고구려 백제 신라)
목차
고구려 궁궐
백제의 궁궐
신라의 궁궐
본문내용
고구려 궁궐
고구려 왕궁터로 알려진 것은 길림성 집안현의 국내성 터와 평양시 대성 구역의 안학궁터, 평양성(장안성)의 궁성터 등이다. 고구려는 도읍을 통구에서 대성산 일대의 평양으로, 다시 장안성 일대의 평양으로 옮기면서 국가의 발전과 상응하 는 도성과 궁성을 갖추었다. 초기에는 평서오가 산성을 유기적으로 관련짓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로 건설하였다. 그러나 장안성에서는 이들을 결합한 평산성을 쌓고 그안에 체제를 갖춘 도시를 형성하여 일반 백성들도 성 안에서 살게하였다. 현재 국내성이나 장안성 내성의 궁궐터는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며 다만 안학궁만이 발굴 조사되어 고구려 전성기 궁궐 건축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 통구 -> 대성산 일대의 평양 -> 장안성 일대의 평양 )
-국내성
고대 국가 시기 최초의 도성인 국내성에서는 궁전터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재 잘 다듬은 방추형 돌로 네모나게 쌓은 성벽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 "유리왕 22년(서기3년) 겨울 10월 도읍을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어 국내성은 졸본성에 이어 고구려의 제2 수도였음을 알 수 있다.
국내성은 기원전 37년부터 427년까지의 고구려 궁성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