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원각사지십층석탑,대원각사비,팔각정)
- 최초 등록일
- 2009.02.17
- 최종 저작일
-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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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탑골공원 개설
2. 파고다 공원의 명칭의 유래
3. 탑골공원의 발자취
4. 3 ․ 1 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
5. 탑골공원의 현황
6. 탑골공원 내부 주요 문화유적
* 원각사지십층석탑 (圓覺寺址十層石塔)
* 대원각사비 (大圓覺寺碑)
* 팔각정
본문내용
탑골공원이 정확하게 언제 조성되었는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 관한 사료로는 일제강점기 때 편찬된 《경성부사》에 간략하게 언급된 내용이 전부이다. 이후 탑골공원에 관한 대부분의 저서들은《경성부사》를 인용한 것이므로 참고가치가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시 《경성부사》를 인용하여 제작한《서울시사》에서 언급된 탑골공원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서울시사》에서는 공원조성이 광무의 초년에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과 공원의 명칭유래, 그 후 변천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경성부사》를 인용하여 저술한 것이고, 정확한 조성연대를 언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탑골공원의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기가 힘들다.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는 고려시대 홍복사의 자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흥복사는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조계종의 본사(本寺)로 역할을 하면서,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각별히 받았던 절이다. 한때 세종의 불교종파 통합정책으로 사찰로서 명맥이 단절 될 위기도 있었지만, 세조 10년(1464)에 홍복사는 불심이 돈독한 세조와 그의 둘째 큰아버지이자 세종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의 발원에 의해서 원각사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지금 탑골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원각사지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는 그 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연산군 때 원각사를 기생방으로 사용하면서 그 이후에는 절이 폐사가 되고, 원각사의 터는 19세기까지 폐허상태로 계속 이어져 온다.
원각사가 폐허상태로 이어져 오다가, 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9세기 공원이 조성되기 전까지는 원각사지의 옛터는 민가에 의해 점거되어 있었다. 1894년부터 1897년에 걸쳐 조선을 방문한 비숍여사의《Korea and her Neighbors》에서도 원각사지의 터가 공원이 조성되기 전까지는 민가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참고 자료
강신용, 장윤환, 《한국근대 도시공원사》, 대왕사, 2004.
문화재관리국, 《圓覺寺址十層石塔 實測調査報告書》, 1993.
황수영, 《서울육백년사 문화사적편 - 탑골공원의 개설과 현황》, 1993.
소재귀, 〈圓覺寺址十層石塔의 硏究〉, 정신문화연구원, 1986.
문화재청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 홈페이지 - http://sca.visit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