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기영의 <고향>에 대해 이기영의 생애와 문학배경, <고향>의 내용과 가치 그 한계 등
<고향>의 전반적인 부분을 심도 깊게 다룬 리포트입니다.
이광수의 <흙>과 심훈의 <상록수>와의 비교 내용도 있습니다.
A+받았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이기영의 생애와 <고향>
2. <고향>의 내용
3. <고향>의 특징
4. <고향>의 가치와 한계
(3)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계급소설의 장편적 확대를 가능하게 만든 장편소설 <고향>은 1933년 11월 15일부터 1934년 9월 2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계급문학운동의 전개과정에서 거둔 단편적 성과들을 한데 모아 총체적으로 형상화해 낸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계급문학으로서의 농민문학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기영의 <고향>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가치와 한계는 어떠한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이기영의 생애와 <고향>
민촌(民村) 이기영은 1920~30년대 계급주의 문학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이기영은 1895년 5월 29일 충청남도 아산군 배방면 회룡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가 아주 어린 시절에 천안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그의 고향은 출생지가 아니라, 성장지인 천안으로 보아야 옳다. 이기영 집안은 덕수이씨 충무공파로서, 그의 아버지 이민창은 20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가정을 그다지 돌보지 않고 신학문과 신교육에 관심을 쏟았던 개화양반이었다. 이기영의 집에서는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지었지만 소득이 많지 않았다. 농사로 인해 해마다 부채가 늘어났고, 그가 서당에 다닐 때에는 곡량을 낼 수 없을 뿐더러, 종이 한 장, 붓 한 자루를 못 사서 쓸 정도로 가난해졌다. 이러한 가난의 체험은 그의 작품 속에 생생한 리얼리즘으로 실현된다. 이기영은 14살 때 조혼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 불만을 느끼고 동경으로 떠난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가 귀향하기 직전 『개벽』에 <오빠의 비밀 편지>(1924)를 현상 투고하여 당선되는데, 이로부터 이기영의 문단생활이 시작된다. 이기영은 문단에 등단한 이듬해 조명희의 알선으로 ‘조선지광사’에 입사하게 되는데, 이 잡지는 진보적 계몽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이 잡지사에서 일을 보게 된 그는 1925년 결성된 KAPF의 사상적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간다
참고 자료
이기영, 「나의 수업시대」, <동아일보>, 1937. 8. pp.5~7
권유, 『이기영 소설연구』, 학지사, 1993, p.34.
김재용이상경 외, 『한국근대민족문학사』, 한길사, 1993, pp.450~456, 참조.
김수자,「1930년대 농민소설 연구: 흙 고향 상록수를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학위논문, 1997, pp.28~30.
조남철,「이기영의 농민소설 연구」,『논문집』제18집,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994.8, pp.83~85, 참조.
민병휘, 「민촌 <고향>론」,『백광』, 1937, p.61,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