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대몽항쟁에서 김윤후가 이끈 의병의 최고의 승리, 용인 처인성 전투
- 최초 등록일
- 2008.12.27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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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잊혀지고 있는,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처인성 전투.
대몽항쟁에서 세계정복을 이루던 몽골에 대항해 사상최고의 일승을 기록한 처인성전투.
조선시대의 의병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김윤후가 이끈 처인성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 A+자료. 수정할 곳 없다는 교수님의 평가.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몽고의 침입
1) 몽고의 세계 정복
2) 몽고의 침입
2. 처인성 전투
1) 흐름
2) 김윤후
3) 처인성 전투, 그 후
4) 왜 처인성일까?
① 처인성
② 처인성의 의의
5) 왜 농민군이 주력군이었을까?
3. 왜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나?
Ⅲ. 맺음말
Ⅳ. 참고자료
본문내용
1592년, 왜군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 국토를 유린하고 있었다. 관군이 대패하고 관료들이 명나라 망명을 준비하던 때, 임진왜란 의병 운동의 선구자인 ‘조헌’은 의병 모집 격문에 한 선례를 들어 천여 명의 거국적인 민중 봉기를 이끌어낸다.
김윤후는 화살 하나로 돼지를 맞혀 죽여 황성에서 몽병을 물리쳤으니
(金允侯一箭豕?退蒙兵於黃城) - 조헌의 중봉집 -
바로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영웅, 처인성 전투에서의 ‘김윤후’였다. 여기서 돼지로 묘사된 사람은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리타이이다. 김윤후는 3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의병운동의 상징으로 부활한 것이다.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한 의병 모집 경문에 이 사건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 시기까지만 해도 김윤후와 처인성 전투가 조선 백성들의 가슴 속에 뿌리 깊게 각인되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의병들은 조국이 참화를 겪을 때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김윤후를 생각하며 분연히 일어났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나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승전 등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그 업적이 고유명사가 되어서 일반인들에게 기억된다. 하지만 대몽항쟁에서,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하면서 대몽항쟁 사상 최고의 승전을 기록한 처인성 전투는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 그 중요성에 비해 자료도 적으며 역사서에서도 몇 줄의 서술로만 그쳐있기 때문이다. 세계 정복을 이루던 몽고군을 격퇴한 자랑스러운 전투. 몽고의 역사서에도 이 패전이 서술되어 있을 정도로 몽고에게는 뼈아픈 일패였다. 이렇게 위대했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 처인성 전투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을까? 따라서 우리는 작지만 강했던 나라 고려를 돌이켜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 자랑스러운 선조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참고 자료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최용범, 중앙M&B, 2003
산전수전고려사, 박선식, 푸른나무, 2000
반란의 시대, 김정환, 푸른숲, 1997
전쟁으로 보는 한국역사, 이기훈, 지성사, 1997
高麗政治史論, 민현구, 고려대학교출판부
한민족전쟁통사, 국방군사연구소
여몽전쟁사,
한국사
KBS 한국사전
오마이뉴스 “대몽항쟁의 격전지, 처인성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