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견학 후 창덕궁 내부 시설물인 금천교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 지혜가 담긴 유물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08.12.23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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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서양 과학 기술과 문명에 관한 내용으로 창덕궁에 있는 금천교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과학적인 관점, 그리고 조선의 사상과 관련해 해석해본 것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돈화문을 들어서면 창덕궁 내의 다른 길들과 마찬가지로 길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 가운데는 어도御道라고 하여 왕만이 다닐 수 있었다. 어도는 돈화문에서 몇 십 미터를 북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금호문이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여 창덕궁 내부로 향하게 되어있다. 일직선으로 전각들이 통하여있지 않은 일정치 않은 경로는 흘러내리는 산자락에 맞추어, 자연과의 배치를 중시하는 창덕궁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꺾인 길 앞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개울이 가로질러 흐르고 이를 금천禁川이라고 하는데 궁궐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의미로 배산임수의 뜻을 살리는 명당수다. 잡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흐르는 물에 씻어 바르게 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러한 금천과 어도가 만나는 곳에 놓인 다리가 바로 창덕궁의 금천교錦川橋이다. 유교 중심사회에서 왕은 스스로를 신과 동일시하였고, 따라서 왕궁은 정부이기도 하지만 신이 사는 신성한 곳으로 간주된 것이다. 따라서 금천교는 신이 사는 곳과 인간이 사는 곳을 구분 지어주는 것으로, 다리부터는 신의 영역이라 생각하여 아름답게 꾸민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다리에 신들의 세계에 잡신을 막기 위한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상상의 석수들을 조각하고, 인간이 무서워하는 도깨비를 새겨 넣었다.
현재 궁궐 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교로 전해지고 있는 금천교는 조선왕조 태종대인 1411년 건립되었다. 1884년 10월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에는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개혁파가 이 다리 밑에 숨어서 위험을 모면했다고도 한다. 길이 12.9미터, 폭 12.5미터 되는 금천교는 그 짜임새와 해태, 거북, 귀면상, 청판의 풍혈 등의 조각들이 조화를 이루어 언뜻 기교가 넘친 듯하나 매우 소박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직선과 곡선을 조합하여 만든 이 다리는 무지개 모양으로 구부정하게 놓였으면서도, 나무다리처럼 어긋남이 없다.
참고 자료
우리 궁궐 이야기 홍순민 청년사 1999
서울600년 김영상 대학당 1997
서울의 고궁산책 허균 효림출판 1994
http://blog.naver.com/ehtrue1/60035220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