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 발표 자료
- 최초 등록일
- 2008.10.25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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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유 발표 자료입니다.
오타가 좀 있으니 주의 하세요 ~
목차
Ⅰ. 한유(韓愈)의 생애
Ⅱ. 고문운동(古文運動)과 한유
Ⅲ. 한유와 관련된 Episode
- 1. 간담상조(肝膽相照)
2. 청천백일(靑天白日)
3. 퇴고(推敲)
4. 묘지문(墓誌文)에 얽힌 이야기
5. 제악어문(祭鰐魚文)
6. 왕정주(王廷湊) 의 난(亂)
본문내용
Ⅰ. 한유의 생애
한유의 당대의 사상가, 문학가, 교육가로 당송팔대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자는 퇴지로 당나라 대종 때인 서기 768년에 태어났다. 한유는 3살 되던 770년에 비서랑으로 지냈던 아버지를 잃었다. 한유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한유 자신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한유에게는 한씨 가족으로 일생을 마친 유모 이씨가 있었는데 한유는 이 유모에게 감사하였고, 어머니는 한유를 낳은 뒤 죽은것 같다.
한유는 아버지가 죽은 뒤 형 한회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한유가 7살 때 한회는 낙양에서 장안으로 전임되어 재상인 원재에게 인정을 받아 관직에 있었는데 한유는 이 때 책 읽고 글 짓는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는 독서인들 사이에 끼어 장차 형처럼 관계로 나가기 위한 수업을 하였다. 그러나 777년 한유 10세에 원재가 실각하고 자살하여 형 한회가 곡강으로 유배 보내져 형을 따라 곡강으로 갔으나 다음해 778년 한회는 42세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사람은 한회의 부인 정씨와 한유(11세) 그리고 조카 한노성(10살)이었다. 그 해 한유는 고향인 남양으로 돌아오지만 생계가 어려워 강남으로 이주했다. 강남선주로 이주한 후부터 한유의 생활은 안정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학문을 시작하여 8년에 걸쳐 학문을 연마하였다. 강남 선주는 전통적인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런 전통적인 중국 문화 속에서 한유는 생활하였다. 그 뒤 786년 19세에 진사과에 응시하려고 단신으로 상경하였다. 그의 장안에서의 생활은 매우 빈곤하였다. 787년 되던 해에 처음으로 진사과 시험을 보았으나 낙제하였고 그 다음해 또 그 다음해 계속 시험을 보았으나 세번 다 낙제를 하였다. 세 번째 낙제한 다음해인 790년 장안을 떠나 강남으로 돌아왔다. 그 후 1년만에 다시 상경, 25세 나이로 진사과 시험에 합격하였다.
참고 자료
국회도서관
동아원색세계대박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
http://blog.daum.net/essesf/3503551
http://blog.empas.com/oepsci/27313483
<<한유(韓愈)>> 노장시 著, 중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