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과 동서문화의 교류
- 최초 등록일
- 2008.06.23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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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실재 본문 일부와 그와 관련된 중국사의 내용이 덧붙여져있다.
목차
Ⅰ. 몽골 제국의 성립
Ⅱ.몽골제국 後 4汗國과 와해
⑴ 몽골의 분봉제도와 정복전쟁
⑵ 몽골제국의 왕(汗)위 계승분쟁
⑶ 4汗國의 성립과 몽골제국의 와해
Ⅲ. 元제국의 성립과 통치체제의 변화
⑴ 元 제국시대의 성립
⑵ 쿠빌라이(세조) 즉위 後
Ⅳ. 元代의 경제정책
동서문화의 교류
본문내용
Ⅰ. 몽골 제국의 성립
몽골고원통일 및 세력 확대
⑴ 건국 이전의 몽골부족사회
① 당대唐代까지만해도 몽올실위라 불리던 작은 부족이며 몽골고원 북동부의 초원과 삼림이 상접한 지대에 살면서 반목반렵半牧半獵생활을 하는 유목민족.
② 12세기 초 요療가 멸망하자(1125) 몽골지방에 대한 거란의 압력이 소멸되었고 새로 일어난 금金은 급격한 한화로 군사력이 약화되고 이 틈을 이용하여 몽골의 발전이 가속.
③ 외부로부터 압박이 사라지자 부족 간의 패권다툼과 빈부의 차이 → 정치군사적 지배계층noyan과 일반 유목민qurachu간의 계층적인 차이가 나타남.
※ 테무친
1162년 몽골족의 보르지기도씨에 속한 에쉬게이Yes gei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예쉬게이는 몽골부족국가가 금과 타타르의 공격으로 붕괴된 후 일개 부족장으로 전락하였고 9살 때 타타르족에 의해 살해되었다. 테무친은 처음에는 동맹한 케레이트部를 병합하고 여러부족을 차례로 제압해 나갔다. 이때부터 테무친이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이며 몽골고원 동반부의 패자가 되었다.
테무친은 자랑할 만큼의 명문은 아니다. 하지만 나이도 어느 정도 많았고, 세상풍파도 어느 정도 겪었으며 경험도 풍부했다. 또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고 동료에게 매우 극진했다. 유목민 안에서의 상호분쟁 조정능력도 풍부했다.
칭기스는 테무친 시절부터 거란인이나 여진인, 더욱이 무슬림까지 그 막료로 거느리고 있었다. 특히 거란족은 몽골의 교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골인들은 웬만한 사람이면 중국어, 여진어 등 여러 나라 말을 사용할 수 있는 ‘문명인’이었다.
④ 뛰어난 군사력을 기초로 테무친鐵木眞이 부족의 통일을 이룩하여 칭기스칸成吉思汗이란 칭호를 받고 1206년 쿠릴타이 쿠릴타이는 옛 몽골어로 집회集會를 뜻한다. 부족장 종친회의로 선우單于 또는 가한可汗이 추대되었고 중요한 국사가 결정되는 최고 회의체이다.
를 개최해 대칸大汗에 추대됨.
⑵ 칭기스칸의 군사력
ㆍ칭기스칸의 강력한 군사력의 원천 :
千戶제의 군사조직 + 약탈물에 대한 공동분배(후의 分封)제도 + 자샤 몽골인의 생활을 규정하는 관습법.
참고 자료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ㆍ신성곤 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004
ㆍ신승하, 《중국사》, 대한교과서, 1998
ㆍ신채식, 《동양사개론》,삼영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