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수업 `한국현대사산책`
- 최초 등록일
- 2008.04.07
- 최종 저작일
- 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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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현대사산책이란 책을 읽고 리포트 작성한것입니다.
목차
한국현대사산책을 읽으면서...
‘6⋅25 이후 최대 국난’ : IMF구제금융신청
한국의 IMF극복
MF를 돌아보며...
본문내용
‘6⋅25 이후 최대 국난’ : IMF구제금융신청
처음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6⋅25이후 최대 난국 6⋅25를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6⋅25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6⋅25와 같은 국난이라는 제목부터 상당한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IMF란 세계무역 안정을 목적으로 설립한 국제금융기구로써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하여 온 국제기구이다. IMF는 구조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인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IMF에 들어간 나라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나라로서 경제권을 IMF에 이양하는 것이다.
IMF의 시작은 97년 1월에 한보사태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생각된다. 한보사태란 한보그룹의 부도를 발단으로 이와 관련된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사건이다. 한보그룹의 부실대출의 규모가 5조 7000억여 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는데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과 관련하여 천문학적 금액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정계와 관계, 금융계의 핵심부가 서로 유착하면서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와 국가정보원 운영차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한보사태에 의해 재벌들이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97년 3월 삼미, 4월 진로, 5월 대농과 한신, 7월 기아, 11월 해태와 뉴코아, 12월 고려증권과 한라가 무너졌다.
이로 인해 심각한 경제위기론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모두 경제위기론을 부정하기에 바빴다. 대부분 경제위기를 부정하였고 언론도 마찬가지로 경제위기론을 부정하기에 바빴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아직까지 경제위기를 알지 못하고 외화를 낭비하였다. 김영삼은 “최악의 경우 IMF에 갈 수도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국 11월 21일 한국 경제의 IMF행이 결정되었고 IMF총재 미셸 캉드쉬 일행은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IMF협상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각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결국 IMF의 여파로 많은 회사가 부도가 나고 실업자들이 늘어나게 되고 경제는 어려워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