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 고려의 건국 이념을 표방한 3대정책의 전말
- 최초 등록일
- 2007.12.27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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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보고서는 고려가 건국을 하면서 이념으로 내세운 3대정책.
"북방정책", "민족융화(화합)정책", "숭불정책" 의 관한 보고서 입니다.
위의 정책들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고려의 건국에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이론과 실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Ⅰ. 고려의 건국이념의 탄생 및 고려 초의 상황
Ⅱ. 고려 중기의 건국이념의 이행
Ⅲ. 고려 말기의 건국이념의 결말
본문내용
Ⅰ. 고려의 건국이념의 탄생 및 고려 초의 상황
태조 왕건은 918년 이미 민심을 잃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위의 오르게 됩니다. 왕위에 오르게 된 태조는 당시 혼란스러운 민심과 상황의 대응하기 위해 건국이념을 표방한 3대 정책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북방정책”, “민족융화(화합)정책”, “숭불정책”입니다.
이 가운데, 먼저 “북방정책”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고려를 건국할 당시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거란에게 빼앗겨버린 과거 고구려의 땅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태조는 실제 서경에 일 년에 100일 이상 왕을 머물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이러한 정책은, 서경은 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과하고 “북방정책”을 펼치기 위한 중심지 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융화(화합)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고려를 건국하기 이전에 신라시대부터 각자 지방에 호족세력들이 독자적인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견제하기 위한 태조는 ‘정략적인 결혼’ 등을 통하여 호족세력을 자신의 세력으로 포용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숭불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숭불정책”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기본정책으로써, 불교야 말로 고려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데 가장 알맞은 사상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하여 신라 및 후백제등의 백성들의 민심을 하나로 묶는데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정책의 실행 일환으로 ‘팔관회, 연등회’등의 불교행사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열었으며, ‘개태사’등의 절을 지어 불교를 널리 장려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