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조 시대의 탕평책과 정치
- 최초 등록일
- 2007.11.30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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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당시 장학금 타려고 레포트에 미쳐서 온갖 논문이며 인터넷 싸이트며 책이며 다 뒤져서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절대로 돈 아깝지 않으실거에요...
목차
*영․정조의 가계도
영조 [英祖, 1694~1776]
*들어가는 말
*본론
1.영조시대 정치사의 전개과정
2.영조의 개혁정치
(1)탕평책
(2)형률의 완화
(3)경제정책
(4)사회정책
(5)국방정책
(6)문화진흥정책
*나오는 말
정조 [正祖, 1752~1800]
*들어가는 말
*본론
1.정조 시대 정치사의 전개과정
(1)가계의 계승
(2)홍국영의 몰락과 정조의 계책
(3)신해박해와 벽파의 기세
(4)정조의 업적
2.정조의 개혁정치
(1)정조의 왕권강화를 위한 정치
①탕평책 계승
②규장각 설치
③장용영 설치
④화성 신도시 건설
-갑자년의 구상
-사도세자의 복권과 추존
-화성건설 논쟁과 정조의 ‘人和’론
(2)정조의 탕평책과 고뇌
①의리 탕평론의 전개
②정조의 건강과 인사조치
③오회연교
④외척 세도론의 등장
⑤탕평책의 한계
(3)정조의 사회통합 사상
①의리론
②명검론
③언론
④진퇴론
*⌜정조실록⌟ 다시보기
*나오는 말
본문내용
영조 [英祖, 1694~1776]
◈ 들어가는 말
영조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 중 가장 재위기간이 긴 임금 이다. 1724년 8월30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등극하여 1776년 3월5일 경희궁에서 붕어 할 때까지 장장 51년 7개월여를 재위하게 된다. 그러니까 무려 53년간 조선을 다스린 셈이다. 조선의 제12대 임금인 인종(1544~1545)의 재위기간이 7개월 남짓 되니까 영조의 기록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기로소`라고 하여 노령의 임금이나 고관을 우대하기 위한기관이 있었다. 신하는 문신 중에서 정2품 이상의 관료로 70세 이상만이 기로소에 들어 갈 수가 있었는데 역대 임금 중에서는 태조(1392~1398),숙종(1674~1720),영조(1724~1776)만이 기로소에 들어갔다.
영조는 83세라는 천수를 누릴 만큼 타고난 건강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런 만큼 영조에게 무슨 특정한 지병이 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므로 영조의 붕어는 자연사로 보는 게 무난할 것이다. 다만 영조의 재위 말년에 영조의 주위에 외척이 득세한 것으로 보아 이때에는 이성적 판단력이 많이 흐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영조의 어진(임금의 초상)을 본 관상학자들의 얘기를 빌자면 영조는 감정의 기복이 무척 심한 상이라고 한다. 예컨대 잦은 양위파동이나 장조(일명 사도세자)를 정식 재판절차 없이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것 그리고 수시로 3정승을 자주 교체했으며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도 자주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재위말년에는 이러한 영조의감정의 변화를 잘 인지하는 외척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영조는 자신의 건강과는 달리 참척(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음)의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자신의 장자인 진종(일명 효장세자)을 비롯하여 딸들인 화순, 화협, 화평옹주가 모두 영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진종의비이자 영조의 며느리이기도 한 효순 황후 역시 영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조연간의 정치사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영조의 개혁정치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우리는 영조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