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 성결교회사
- 최초 등록일
- 2007.11.15
- 최종 저작일
- 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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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명수 저, 초기한국성결교회사 독서보고서입니다.
서평을 중심으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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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4학년이 되어서 초기 기독교 공의회나 중세교회사는 이야기 하면서 성결교회의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어거스틴이나 오리겐은 알면서 성결교회 창립자의 이름은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적어도 성결교회 역사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수업을 신청했다. 참 감사하게도 초기한국 성결교회의 역사 속에서 성결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다른 사람들은 복음은 3류가 아니지만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는 3류 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언더우드도 인도 선교사를 희망했다가 시험에 떨어져 한국에 왔다고 하고, 성결교회도 웨슬리의 곁가지에서 성결운동이 일어나서 그 가지 중의 하나가 동양선교회고, 정식으로 신학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를 해서 현재 우리나라 교회에 폐해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초기한국성결교회사를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성결운동은 교권화 되어 굳어져가는 감리교 내의 운동이었다. 웨슬리가 성공회 내에서 일으킨 운동처럼 성결운동 역시 감리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이었다. 이는 성결의 역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인 뜨거운 모임이었고 이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감리교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 무리와 함께 하신다면 웨슬리의 곁가지이면 어떤가? 그렇게 말하면 ‘웨슬리도 성공회의 곁가지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해본다.
카우만이나 길보른 둘 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선교에 대한 열정에 불타오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베드로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던 것처럼 맨발로 선교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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