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금석문이란 무엇인가
- 최초 등록일
- 2007.04.01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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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금석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금석문이란 무엇인가
Ⅲ. 역사연구에 있어서 금석문의 활용
1. 개별 사건에 대한 서술
2. 판독의 어려움
3. 왜곡 가능성이 적음
Ⅳ. 마치면서 - 금석문의 가치와 앞으로의 연구자세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근거로 사용되는 사료는 당대에 직접 작성된 1차 사료와 후대에 이들을 토대로 작성된 사료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후대에 씌어진 사료는 현장감이 떨어지고, 후대 사람들의 사상이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실상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하고, 때문에 사료로써의 가치는 당대에 쓰인 자료가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대에 직접 작성된 1차 사료중 하나인 금석문은 글자를 풀이한 그대로 단단한 금속과 돌에 새겨진 그림이나 글씨를 총칭하는 것으로 당대의 유물인 만큼 그 중요성과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금석문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창녕 인양사비문(仁陽寺碑文)의 연구-8세기 말~9세기 초 신라 지방사회의 단면- 하일식. 1996「창녕 인양사비문의 연구-8세기 말~9세기 초 신라 지방사회의 단면-」「한국사연구」(한국사연구회)
와 신라 통일기의 왕실 직할지(直轄地)와 군현제(郡縣制)-청제비(靑堤碑) 정원명(貞元銘) 역역운영(力役運營) 사례분석- 하일식. 1997 「신라 통일기의 왕실 직할지와 군현제-청제비 정원명 역역운영 사례분석-」「동방학지」(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를 중심으로 해서 금석문이 역사연구에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알고 그 가치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Ⅱ. 금석문이란 무엇인가
금석문은 말 그대로 철이나 청동 같은 금속성 재료에 기록한 금문과 비석처럼 석재에 기록한 석문을 합하여 일컫는 말이다. 금석문은 마멸과 훼손으로 인해 해석이 애매하거나 어려울 수도 있고 이로 인해 학자들 간에 다른 견해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당대의 사람의 손에 의해 직접 씌어진 구체적인 기록이므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금석문은 중국과는 달리 쇠붙이보다는 돌에 새긴 것이 많으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비석 종류이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문화발전이 가장 뒤졌지만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수도를 옮긴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그 문화유적이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양의 금석문이 남아 있다. 신라는 한자를 받아들인 뒤 얼마 되지 않아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진흥왕의 순수비나 남산 신성비와 같은 귀중한 금석문 자료를 남기고 있다.
참고 자료
장충식. 1984 「신라 금석문 조사연구의 현 단계」「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하일식. 1996 「창녕 인양사비문의 연구-8세기 말~9세기 초 신라 지방사회의 단면-」「한국사연구」(한국사연구회)
하일식. 1997 「신라 통일기의 왕실 직할지와 군현제-청제비 정원명 역역운영 사례분석-」「동방학지」(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하일식. 2005 「신라 왕실 직할지의 초기 형태에 대하여-청제비 병진명의 정밀판독과 분석-」「동방학지」(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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