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와 초의선사의 교류
- 최초 등록일
- 2007.01.30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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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 배경론 수업에 제출한 리포트입니다.
초당김정희와 초의선사의 문학적,인간적 교류에 대해 고찰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완당과 초의선사의 교류
1.완당과 불교
2.초의와 완당의 첫 만남
3.유배를 가는 완당과, 초의의 대둔사에서의 만남
4.완당의 제주유배지로 찾아온 초의
5.유배가 풀려난 완당과 초의의 대둔사에서의 재회
6.강상에 온 초의
7.북청 유배 후 과천에서 만나는 완당과 초의
8.완당과 초의와의 영원한 이별
Ⅲ.나오는 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한 시대의 문학만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그 시대의 사상과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대의 문학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문학의 배경을 이루는 사상이나 종교 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사상을 주름잡던 성리학자들은 학문을 하면서 동시에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유교로 인해 약화되었지만 그 명맥을 유지해온 승려들 또한 수련을 쌓으면서도 많은 문학작품을 창작하였다. 당대 사상의 두 축을 형성하던 성리학자들과 승려들은 서로 많은 사상적, 문학적 교류를 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글에서는 그러한 본보기가 되었던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의 교류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우리에게는 추사체로 널리 알려진 금석학자 김정희와 茶聖으로 여겨지는 초의 선사는 동시대에 유학과 불교의 정점에 있던 인물들로서 반평생동한 많은 교류를 해왔고 그에 관련된 많은 문학작품도 남겼다. 그렇기 때문에 본고는 성리학자인 추사 김정희와 승려인 초의선사의 42년간의 깊은 교우관계를 살펴보고 거기에서 파생되었던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Ⅱ. 완당과 초의선사의 교류
1.완당과 불교
금석학과 고증학의 대가였던 완당은 스님들과의 많은 교류를 해왔는데, 훗날 완당의 예술이 불가의 선사상으로 이해되고 설명될 정도로 그는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초년엔 예산 화암사에서 지냈고, 중년에 묘향산에 들어갈 때 『금강경』을 갖고 갔으며, 노년엔 백파선사와 크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말년에는 봉은사에서 생활하며 항상 염주 108개를 지니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 자료
김정희, 『국역완당전집1,2,3,4』,솔,1986.
김봉호역,『초의선집』,문성당,1977.
유홍준,『완당평전1,2,3』,학고재,2002.
임우기편, 『완당시선』,솔,1997.
임혜봉,『다성 초의선사와 대둔사의 다맥』,예문서원,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