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포도청을 어찌아느냐
- 최초 등록일
- 2006.12.07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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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너희가포도청을어찌아느냐`라는 책을 읽고 레포트를 쓴 것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제1장. 조선 최대의 포도청 습격사건
제2장. 조선의 경찰기관
제3장. 포도청
제4장. 도적과 포도청
제5장. 왕권과 포도청
제6장. 경무청
제7장. 빼앗긴 경찰권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포도청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어떤 업무를 담당을 해왔는지 현재 우리경찰과 흡사한지 다른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2. 본론
제1장. 조선 최대의 포도청 습격사건
1. 목수들의 집단 난동
1860년 철종 11년 때,음력 5월 16일 12시경, 주동자 탁경순의 주위로 목수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목수들은 우포도청을 시작으로 좌포도청, 군광청까지 들어가 들고있던 몽둥이로 군관들을 때리고, 건물을 부수기 시작하였다. 처음의 탁경순은 매부를 찾는 것을 시작으로 포도청을 습격했지만, 나중에는 이판사판으로 모두를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매부 백계창은 감시의 눈을 피해 소량의 쇠못을 빼내다가 잡히자 탁경순을 비롯하여 주위 목수들의 감정이 격해져 일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목수들의 습격사건이 있은 후 포도대장은 크게 화가나 탁경순 외 11명을 잡아왔다.
2. 포도청 습격사건의 종말 포도대장은 탁경순 외 11명에게 진실을 고하게 한 후 임금을 뵙고 전후 사정을 아뢰었다.
임금은 이 일을 조정에게 맡기고, 포도대장은 비변사에 보고한 후 포도청의 마지막 보고서가 내려졌다.
30대의 목수 탁경순은 목이 잘려 효수되었고, 도망간 개성 목수 등은 끝내 잡히지 않아 이 일과 다른일로 하여서 포도대장 둘은 그해 9월에 먼 변방으로 유배가 되었다.
제2장. 조선의 경찰기관
1. 왕조의 뿌리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즉위 후 민심의 안정을 위하여 국호를 고려라 했고, 수도도 그대로 개경에 두었으며, 국가제도, 풍속, 언어 등 모든 면에 걸쳐 고려의 그것을 그대로 사용했다가 2월에야 국호를 정식으로 조선으로 정했다. 조선왕조의 뿌리는 경국대전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도 왕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사회를 바탕으로 한 관제와 군제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그 기능도 왕권신수설에 의한 유럽의 근세와 마찬가지로 경찰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다. 즉, 왕권은 바로 경찰권으로 나타난다. 포도청을 비롯한 경찰기관들은 왕조를 받드는 한편, 백성들 위에 군림해온 면도 있다. 왕조와 백성 사이에서 경찰기관들이 한 시대를 이끌어간 것이다.
양반은 중인과 함께 양민과 천민을 사실상 지배하는 지배계급이었다. 그리하여 양반에게 대드는 상민은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양반에는 미치지 못하고 양민보다는 우위에 있는 중간신분층으로서 중인이 있다. 중인은 크게 좁은 의미의 중인과 넓은 의미의 중인으로 구분된다. 좁은 의미의 중인은 주로 중앙에 있는 역관, 의관, 천문관, 지관, 금루, 산관, 율관, 사자관, 화원 등의 기술관원을 말하고, 넓은 의미의 중인은 중앙의 서리와 지방의 향리, 토관, 군교, 교생, 그리고 서얼도 포함한다.
절대주의 군주체제인 당시의 정치조직은, 강대한 왕권하에 최고 중앙행정기구로서 의정부를 두었고, 1555년에 비변사가 설치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